기생충 연구와 4대강

우리나라에서 ‘기생충학’이 탄생한 건 국민의 대부분이 기생충으로 인해 신음하던 1964년. 그 당시는 먹고 싶어도 먹을 게 없었고, 여기저기 기우고 해어진 옷으로 겨울을 나야 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다 해도 기생충학 강의와 연구는 해야 했는데, 강의야 어떻게든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연구였다. 연구를 하려면 연구비가 있어야 하고, 실험을 할 장비가 있어야 했으니까. 교수들에게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던 그 시절에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었기에, 교수들은 어쩔 수 없이 사재를 털어서 연구를 했고, 돈과 장비가 필요한 일보다는 몸을 쓰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생충학은 대변 검사를 하는 학문이 아니다.”

나를 기생충학으로 인도하신 교수님은 이렇게 날 꼬였지만, 그 시절에 나온 논문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대변 냄새가 풀풀 나는 듯하다. ‘경북 지역 주민들의 대변 검사’ ‘전남에서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들의 대변 검사’ 등 논문의 절반 이상이 대변을 소재로 한 것이었고, 심지어 쥐똥을 조사한 것도 있었다. 



This image is of a schistosome parasite. It enters the body through the skin of persons 
coming in contact with infested waters. The adult worm lives in the veins of its host. 
The parasite is magnified x256 in this photograph. (National Cancer Institute / Bruce Wetzel, Harry Schaefer)



그럼 나머지 절반은? 기생충 가운데 상당수가 물고기를 날로 먹어서 전파되니,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다 기생충이 얼마나 있는지를 조사한 거였다. 
‘경북 지방에서 잡은 물고기의 기생충 조사’ ‘전남 지역 물고기의 기생충 감염률’ 등 말이 기생충학자였지, 거의 어부와 진배없는 역할을 우리 선배들은 묵묵히 하셨다. 하지만 이런 노력 덕에 우리나라의 기생충 감염률이 크게 낮아졌으니, 이 일들은 당시로선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경제 성장의 혜택은 기생충학도 받았다. 연구비가 늘어났고, 여느 선진국 부럽지 않은 장비를 갖추게 되면서 우리도 몸으로 때우는 연구 대신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 학자들이 외국 학술지에 어렵지 않게 논문을 싣게 된 것도 그 덕분인데, 최근 나온 학술지를 보면 기생충의 DNA를 분석해 분류학적 위치를 알아내고, 혈액의 항체를 이용해 기생충을 진단하는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최첨단 연구들이 실려 있다. 지금이라고 해서 대변 검사가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단순히 대변 검사만 한다고 하면 연구비를 받기도 어렵고, 학술지에서도 잘 실어주지 않는 시대가 된 건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지난 40년은 건설의 시대였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에서 고층빌딩이 즐비한 지금의 모습이 되기 위해선 숨쉴 틈 없이 건물을 짓고 도로를 깔아야 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해 건설업보다 정보기술(IT)이 각광을 받고, 개발보다 환경의 중요성이 부각된 요즘에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중 20%가량이 건설에서 나오고 있다. 4~5% 수준인 미국과 서유럽은 물론 고성장을 구가하는 중국·브라질(7%)과 비교해도 턱없이 높은 수준이란다.

상지대 홍성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땅을 파서 10원을 버는 경제가 머리를 써서 10억원을 버는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그것도 부족해 국회는 지금 4대강 사업에 들어갈 22조원의 예산을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전국을 파헤쳐 놓으면 살림살이는 조금 나아질 수 있겠지만, 요즘 시대에 건설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건 주민들의 대변을 받아다 연구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테네시강 유역을 개발해 경제를 살린 건 1932년, 지금부터 77년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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