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와 PD수첩

“내 꿈은 말이지, ‘네이처’지에 논문을 하나 실어보는 거야.”

그의 말을 듣고 적잖이 실망했다. 우리 학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생님의 꿈이 노벨 의학상도 아닌, 학술지에 논문 하나 싣는 거라니.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안다. 그분의 꿈이 결코 소박한 게 아니었다는 걸.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네이처에 논문을 싣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됐으니까.

좋은 학술지와 그저 그런 학술지는 인용 빈도에 따라 나뉜다. 전자에 실린 논문은 널리 읽히고 오래도록 다른 학자들에게 회자되는 반면, 후자의 논문은 저자마저도 읽지 않는다. 네이처는 그 ‘좋은 학술지’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거기 실린 모든 말은 그 자체가 진리고 빛이요,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누군가가 “저 사람 네이처야”(네이처에 논문을 실어봤다는 뜻)라고 한다면 거기 있던 모두가 그 사람을 다시 보고, 일제히 경배할 지경이다. 난 네이처에 논문을 실은 사람을 딱 한 명 직접 봤는데, 내 눈에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의 머리 위에는 분명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

최고 권위가 부여되는 만큼 네이처에 논문을 싣는 건 어렵기 그지없는 일이다. 수천편의 논문이 투고되지만 정작 게재되는 건 1% 이내. 대학마다 네이처에 논문을 실은 교수에게 수천만원에서 1억원까지 포상금을 주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네이처에 의해 학자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논문을 실어본 사람, 논문을 보내본 사람, 그리고 나머지.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 서정선 교수를 비롯한 몇 명만이 첫번째 그룹에 속한다. 두번째 그룹에 속하기도 어려운 것은 괜히 어설픈 논문을 보냈다가는 망신만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네이처가 이렇게 높은 권위를 갖게 된 비결은 뭘까? 바로 독립성이다. 정말 좋은 논문이 아니면 두들겨 패도 논문 게재를 거부했던 게 오늘의 네이처를 만든 거다. 
만일 네이처 편집진이 자기 딸이 썼다는 이유로 “Go to Swiss with Sonja(손자와 함께 스위스에 가다)”라는 허접한 논문을 실어줬다면, 실험 결과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한 “Sejong City, the remake(세종시 수정안)”를 표지에 실었다면 네이처는 아무도 안 보는 학술지로 전락했을 거다.





학술지와 방송사는 전혀 다른 조직이지만 그 생명이 ‘독립성’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방송이 독립성을 잃고 정권의 눈치만 본다면, 19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방송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방송을 장악하고픈 정권의 심정은 이해한다. 나 역시 네이처 편집진을 측근으로 꾸며 내 논문은 무조건 실어주는 꿈을 꾸니까 말이다. 하지만 현 정권이 나쁜 건, 그걸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몸소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지인에 의하면 방송이 장악될 경우 가장 먼저 손볼 게 「PD수첩」이란다. 
「PD수첩」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대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황우석의 줄기세포가 조작임을 밝혀낸 건 네이처에 논문을 실은 이상의 업적으로, 우리가 두고두고 고마워해야 할 대목이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엄청난 세금이 낭비되고, 난자를 제공하느라 여성들의 건강이 크게 훼손됐을 테니 말이다. 

이런 「PD수첩」이 없어진다면 사회 정의는 도대체 누가 지켜야 할까? 요즘 칩거 중인 독수리 5형제라도 불러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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