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무리 써봤자 미디어스 김완 기자님 등 앞서 패러디를 쓰신 분들의 작품에 필적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최영해 기자님께 존경의 뜻을 표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강렬해, 몇 자 적어봤어요. 재미 없더라도 너그러이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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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네티즌 전상서
※ 이 칼럼은 최영해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실제 삶과 관계없이 그의 명칼럼 ‘채동욱 아버지 전상서’만 읽고 최 논설위원의 입장에서 쓴 창작물입니다.
제가 동아일보에 칼럼을 쓴 건 2006년 <광화문에서>가 처음입니다. 올해까지 하면 벌써 8년째, 태어나서 뭔가를 이렇게 오래 해본 건 처음이에요. 그게 제가 제일 못하던 글쓰기라니, 저한테 “글 말고 몸 쓰는 걸 해봐. 앞으로 우리나라에 삽질할 일이 많아질 거다”라고 충고했던 고등학교 담임이 본다면 놀라자빠질 일이지요. 물론 칼럼을 쓰는 건 쉽지 않았어요. 주어와 동사, 목적어의 어순이 헷갈려 종종 정체불명의 문장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포기하지 않은 건, 이곳 동아일보에는 저만큼이나 글을 못쓰는 분들이 칼럼 지면을 장악한 채 정말 말도 안되는 칼럼들을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어요. ‘광화문에서’를 시작으로 ‘특파원 칼럼’ ‘횡설수설’ ‘오늘과 내일’ 등에 꾸준히 칼럼을 썼지만, 반응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제가 쓴 칼럼을 보신 어머니마저 “이따위로 쓸 거면 내가 칼럼니스트 하겠다”라며 한참 우셨답니다. 댓글 하나 달리지 않는 제 칼럼이 처량해 보여 제 스스로 제 글에 댓글을 달기도 했지요. 하지만 전 제 칼럼의 진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문제라고 생각했고, 언젠가 한번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칼럼을 쓰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며칠 전에 조선일보가 보도한 채동욱 검찰총장 기사를 인터넷에서 우연히 읽었어요.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로 아들을 낳았다는 기사였어요.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사실 제가 기자가 되려고 한 이유는 남의 여자문제에 지독하게 관심이 많아서였어요. 기자가 되면 공직자들 여자문제를 공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마음껏 쓸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전 이런 특종을 내보낸 조선일보가 무척 부러웠어요. 기사를 보니 검찰의 한 간부가 “청와대가 채 총장의 여자문제를 뒷조사했다”라고 했다던데, 그렇다면 이게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합작품일 가능성도 있나 보더라고요. 청와대가 조선일보만 편애하는 게 너무 속상했지만, 제가 청와대의 눈에 들려면 더 좋은 칼럼을 쓰면 된다는 생각에 눈물을 꾹 참았답니다.
그 뒤 제 삶은 조금 피곤했어요. 네티즌 여러분을 놀래킬만한 엄청난 한 방을 준비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거든요. 심지어 추석이 내일 모레라 가족들이 송편을 빚고, 과일과 고기를 사는 등 차례 지낼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전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았답니다. 제 한심한 글재주를 원망하며 머리를 쥐어뜯다보니, 며칠 사이 팍삭 늙은 것 같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걸 바라보던 중 아이디어가 떠올랐답니다. ‘그래, 채 총장의 아들 시점에서 글을 써보자!’ 글을 완성하는 데는 꼬박 13시간이 걸렸지요. 그 글을 동아일보 간부에게 보냈더니, 난리가 났어요. 이런 재주있는 필자를 몰라봐서 미안하다고 제게 사과까지 하더군요. 하지만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제 글이 신문에 실린 9월 17일부터는 거의 모든 사람이 제 얘기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8년을 연재하는 동안 하나도 달리지 않던 댓글이 2초에 하나씩 달렸고, 저 때문에 동아일보사 전화가 쉬지않고 울려대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어요. 전 청와대에서 훈장이라도 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네티즌들이 제 글에 감동받은 게 아니라는 걸 제 아들이 페이스북에서 알려줬어요. 아들은 네티즌들이 제 글을 유치하다며 비웃고 있다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다는 내용은 우리 문학의 고전인 홍길동전에 이미 나온 얘기라고 아들이 그러던데, 그것 때문에 그러는 건가요? 며칠 밤을 잠 못 이루며 걸작을 써낸 저한테 칭찬은 못해줄망정 왜 제 글을 가지고 이 난리인가요?
가족들은 저에게 창피하다면서 며칠만 잠적해 있으라고 얘기합니다. 아들도 “당장은 아버지가 창피해 죽겠지만 언젠가 아버지가 덜 창피할 날이 올 것”이라고 하네요. 그래도 동아일보 높은 분들은 제 글을 좋아라 하고, 저는 이 글 덕분에 청와대의 주목을 받아서 좋은데, 왜 네티즌 여러분들이 자꾸 수군거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아이의 관점에서 글을 쓴 것까지 아동인권을 유린했다고 트집을 잡는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네요. 네티즌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제가 정신이 이상하다면서 정신과에 가보라고 하는데, 제가 정말 미친 사람인가요? 머리카락을 뽑고 피도 뽑아서 검사해보면 제가 미친 건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거 아닐까요?
네티즌 여러분, 근데 저 칼럼니스트 그만두는 것만은 싫거든요. 님들이 자꾸 이러시면 동아일보에서 결국 저를 자를 거라는 걸 왜 생각을 안하시나요? 지금은 이렇게 욕하지만 내년 추석 땐 “최영해가 썼던 그 칼럼이 정말 최고였어”라며 저를 그리워할 거잖아요. 그래서 그러는데 저한테 칼럼 그만쓰라는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만에 하나 제가 잘리면 그땐 어떡해요? 제가 입사한 뒤 쓴 기사를 보시면 알겠지만 전 기사 쓰는 것도 잘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광고를 잘 따오는 것도 아니란 말이에요. 하루아침에 직업 없는 백수가 돼 버리잖아요. 앞으로도 ‘아버지 전상서’급의 칼럼으로 네티즌 여러분께 즐거움을 드리겠다고 약속할 테니까 제발 그만 욕하세요, 네?
2013년 9월 20일
동아일보에서 네티즌을 사랑하는 최영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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