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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은 기생충

닮고 싶다, 김승환 교육감



전 우리나라 정치에서 부족한 게 유머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비방에 유머로 응수하는 문화가 우리나라에는 없다시피 합니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얼굴은 늘 경직돼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선거를 앞두고 토론회를 해도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결정적인 유머를 터뜨려 주는 후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참 전 권영길 후보가 불판을 갈자는 말로 인기를 끌었지만,

전 그런 준비된 유머보다는 즉흥적인 유머를 좋아합니다.

전북교육청에 강의를 갔다가 김승환 교육감님을 만났습니다.

소탈한 외모도 친근감을 주지만,

제가 감동한 부분은 김승환 교육감님의 유머였습니다.

저를 소개할 때 교육감님이 하셨던 말씀을 여기다 옮겨 봅니다.

서민 교수가 작년에도 강의를 했었어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강의내용이 작년과 똑같으냐? 그랬더니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이 말은 곧 저더러 꼭 들으라는 것이지요?”

폭소가 터졌습니다.

엄청난 유머까지는 아니지만, 정치인들이 이 정도 유머만 있으면

우리 사회가 훨씬 더 여유로워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교육감님에게 반한 것은 유머만은 아닙니다.

교육감님의 페이스북을 보니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생두부, 물고기는 없는 물고기 지진 무우와 김치, 파셀린 등을 부지런히 먹고 있었습니다.

밥을 절반 정도 먹었을 때, 아내가 뭔가를 가져와서 식탁 위에 놓았습니다. 무엇인지 보니까 카레였습니다. 어제 아침에는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 갖다 놓았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 했습니다.

: ! 무슨 반찬을 생각해 보고 갖다 놓고, 생각해 보고 갖다 놓고 그러냐?

아내 : 그럼 생각해 보고 안 갖다 놓고, 생각해 보고 안 갖다 놓고 그러냐?

: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아내 : 그럼 어떻게 해?

더 말하고 싶었지만, 남자의 너그러움을 발휘하여 말을 그쳤습니다.]

믿기진 않지만, 이건 사모님과의 대화였습니다.

저는 결혼 후 아침을 먹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아침을 차려주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인데,

교육감님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반찬을 갖다주는 시기가 잘못됐다고 일갈하십니다.

! 무슨 반찬을 생각해 보고 갖다 놓고...그러냐?”

글을 읽는데 제 손이 다 떨렸습니다.

왠지 제가 아내에게 저런 말을 한 것처럼 빙의가 되어서였습니다.

밥을 중간쯤 먹었을 때 카레를 주면 나머지 절반을 카레에 비벼서 먹으면 되고,

다 먹었을 때 카레를 주면 카레만 후루룩 마시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교육감님은 소탈한 외모와 달리 아주 강한 분이셨습니다.

게다가 !”라뇨.

제가 그런 것도 아닌데 심장이 서늘해집니다.

갑자기 지난 일요일 생각이 납니다.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아내가 계속 뭐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연예인의 외모에 관한 얘기였는데, 그 전에도 여러번 얘기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 지금 개콘 보는데.... 조금 있다가 말하면 안될까?”

아내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자기가 말하는데 감히 딴죽을 걸었다는 것이지요.

아내가 리모컨을 빼앗는 바람에 아내에게 얼마나 빌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아내한테 따졌습니다.

여보는 TV 볼 때 내가 얘기를 걸면 안들린다고 화내지 않느냐, 너무 불공평하다, 이렇게요.

아내는 눈을 부릅뜨고 저한테 이랬습니다.

인생은 원래 공평하지 않은 거야. 여보는 못생겼잖아?”

솔직히 말해서 교육감님의 외모도 저보다 크게 낫진 않습니다.

그런데 교육감님은 어떻게 아침밥상에서 그걸 말이라고 하냐?”라고 일갈할 수 있을까요.

저는 위에 적은 아침밥 단상이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소망을 현실처럼 적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부분을 여쭤보니 교육감님은 대수롭지 않은 듯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카레를 늦게 줬으니 아내가 잘못한 거잖아요.”

당연히 할 일을 했다는 그 모습이 저를 더 놀라게 했습니다.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보면 아내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교육감 이전에는 존경받는 교수님이셨고,

삶에서 우러나온 유머까지 갖추셨으니,

이쯤되면 다 가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배우고 싶습니다.

교육감님의 외유내강을요.

* 김승환 교육감님이 교육감 출마를 위해 전북대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는 모습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5A7FIwVglI&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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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벙어리장갑 2015.03.31 21:40

    교수님도 교육감님처럼 한번 해보시지요. 까짓거 사모님께 몇대 맞고 까무러치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자신의 맷집이 어느정도인지 가끔 한번씩 확인해보는것도 체력검진의 좋은 방법입니다 ^^

    • 기생충서민 2015.03.31 22:34 신고

      저...벙어리장갑님. 아내가 님의 댓글을 봐버렸습니다. 저한테 이럽니다. "어디 한번 해봐! 어떻게 되나." 글구...아마 아내가 님한테 연락드릴 지도 모릅니다. 조심하십시오

  • 세눈박이욘 2015.03.31 22:08

    흠,

    '아내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역으로는

    '남편을 지배하는 여성이 세상을 지배한다.'이겠군요.

    결론은

    교수님 사모님의 지배자 등극!

  • 일랄랑 2015.03.31 23:54

    솔직히
    교육감님과 교수님 외모가 도찐개찐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ㅎㅎ
    하지만 웃음짓는 모습은 두분이 닮으셨어요. 좋은일이 생길것 같은 행복한 웃음입니다.

  • CJK 2015.04.01 09:55

    <부러우면 지는 거다> 이런 말이 있는데, 너무 부러워하지 마시기를!! ^^

    <아내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도 그럴 듯 하지만도,
    <세상을 지배한 자도 아내를 지배할 수는 없다>는 말도 그럴 듯 하지요?

    이번 글에서
    "솔직히 말해서 교육감님의 외모도 저보다 크게 낫진 않습니다." 라는
    부분에서 빵 터졌는데,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혹시 '크게'라는 부분을 강조하신 것은 아닌지.. 낫기는 조금 낫지만서도
    뭐, 그렇다고 크게 나은 것은 없다? 이런 식의 방어벽을 치신 것인지^^

    • 기생충서민 2015.04.01 13:00 신고

      '크게'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진 않았어요. 사실 전 비슷하다고 봅니다^^ 세상을 지배한 자도 아내를 지배할 수는 없다,는데, 전 세상을 먼저 지배해야겠군요.

  • 나무 2015.04.01 10:00

    제 생각에 유머는 서 교수님이 지구최강 중 1인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잘 웃고 갑니다.

    참, 그리고 교수님은 대한민국 뇌섹남 1% 안에 들지 않을까요?

  • 기생충서민 2015.04.01 12:59 신고

    아유 별말씀을요^^ 그래도 뇌섹남이란 말은 아주 마음에 드네요 호호

  • 고교교사 2015.04.02 13:56

    저는 김승환 교육감의 페북 글에서 이런 복선을 느꼈습니다.

    한창 교육을 잘해보려고 노력 중인데 정부가 그러면 안 된다 이렇게 해라 등의 식으로 간섭한(했)다는 사실...그에 대응이 바로 "무슨 정책을 생각해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냐?"라는 방식..


    ㅎㅎㅎ 서민 교수님도 쓰디쓴 불의의 세파에 대해 패러디글을 쓰는데 정권에서 이러면 안 된다는 식으로 계속 딴지를 걸 때


    " 지금 글을 쓰고 있는데 다 쓰고 난 뒤에 말을 걸면 안 되냐?"

    ㅎㅎㅎ

    두 분 다 멋있어요, 그래서 늘 관심을 갖고 읽고 있고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도 두 분 응원합니다!!!

  • 정옥희 2015.04.02 17:42

    먼저 만우절 기사는 다 진짠 줄 알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유머를 알기 때문에 안 속았지용...

    글 중에 '불판 갈자'는 내용은 권영길씨가 한 게 아니라, 노희찬 전 의원이 한 말로 알고 있는데...확인 한번 해 보시죠...

  • 2015.04.02 19:46

    외모가? ㅎㅎㅎ 과연? ㅎ ㅎ

  • 익명 2015.04.03 09:19

    비밀댓글입니다

  • 아하 2015.04.03 11:13 신고

    실컷 웃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 ㅋㅋ 2015.05.14 20:23

    어디 존경할사람이 없어서 김승환을..ㅋㅋ
    한심하시네요

  • 익명 2015.06.13 00:25

    비밀댓글입니다

  • 김윤호 2015.07.02 12:51

    기본적인것 갖고 놀라다니요.김교육감은 뇌가 좋습니다.흔히 천재라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