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은 치매의 가장 흔한 형태로, 대개 65세 이후에 발병하지만 그 이전에도 생길 수 있다. 최근에 있었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게 초기 증상이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오래된 기억도 사라진다. 기억뿐 아니라 신체 기능도 떨어져, 알츠하이머병이 진단된 이후 기대수명은 7년 정도라고 한다. 뇌가 위축되거나 반점이 관찰되고,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기관인 해마의 손상이 보고되었을 뿐, 어떤 기전에 의해 이런 일이 생기는지는 아직 모르고, 그러다보니 특별한 치료책도 없는 실정이다.
<내일의 기억>은 알츠하이머병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 사에키는 광고회사 임원으로, 일을 하는 데 늘 완벽함을 추구한다. 그러던 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바이어와의 만남에 왜 참석지 않았느냐는 것. 깜짝 놀라 스케줄을 확인해보니 과연 그랬다. 그때만 해도 단순한 건망증인 줄 알았지만, 사태는 점점 심각해진다. 회사 가는 길을 몰라 약도를 들고 회사 주변을 빙빙 돌고, 자신도 모르게 아내의 머리를 접시로 가격해 피를 흘리게 한다.
<내일의 기억>의 마지막 장면. 집을 나간 사에키를 찾아다니던 아내는 결국 남편을 찾는 데 성공하지만, 눈을 깜빡이며 아내를 보던 사에키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사에키라고 합니다. 당신은 누구신지요?”
얼마 전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기억력이 도마에 올랐다. 그는 지난해 11월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명진 스님을 지목하며 “강남 부자 절에 좌파 스님을 그대로 놔둬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단다.
외압 논란이 일자 안 원내대표는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명진 스님이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서울대를 나오고 사법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그가 함께 사진까지 찍은 분을 모른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걱정된다. 혹시 안 원내대표가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단계가 아닐까 싶어서.
위에서도 말했듯 알츠하이머병은 65세 이후에 주로 발병한다. 검색을 해보니 안 원내대표는 1946년생, 우리 나이로 65세다. 앞으로 큰일을 할 분이 알츠하이머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손발이 오그라든다.
서울대 의대 서유헌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애기풀이 기억력에 좋다는 논문을 비롯해 100편이 넘는 논문을 세계 유수 저널에 실었다. 서 교수에 따르면 “좋은 기억력을 유지하려면 즐거운 마음상태를 갖고 감정을 안정시켜야” 한단다. 감정중추가 기억중추인 해마와 붙어 있기 때문이란다.
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강압적인 환경에서 일하거나 강압적인 태도로 대하면 사람들은 기가 죽고 자신의 감정을 자꾸 숨기게 된다. 더 부드럽게, 보다 더 민주적으로 대하는 것이 구성원의 능력 발휘뿐만 아니라 기억력에도 좋다.”
안 원내대표가 다행스럽게 알츠하이머병이 아니라면, 그의 기억력이 감퇴한 원인은 강압적인 환경 탓일 확률이 높다. 갈수록 그 수가 증가하는 좌파들을 혼자 다 때려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의 기억력을 떨어뜨렸으리라.
최근 검거된 흉악한 살인범도 좌파 교육을 받은 자였다고 하니, 반공정신이 투철한 안 원내대표가 즐거운 마음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사정이 이런데 사람들은 안 원내대표의 희미한 기억력을 비난하기 일쑤다.
<내일의 기억>에서 사에키는 아내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걸 보고 바닥에 엎드려 흐느낀다. 아내는 그런 사에키를 위로한다. “당신 탓 아니에요. 병 때문이에요.”
명진 스님을 모른다는 안 원내대표님, 그건 대표님 탓이 아니에요. 당신 병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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