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 보니/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 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그룹 산울림의 등장은 내게 충격이었다.
대부분의 대중가요가 사랑을 주제로 한 것들인데 비해
산울림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소재로 아름다운 노랫말을 만들었으니까.
산허리를 구름이 휘감고 있다거나-“산할아버지 구름모자 썼네”
위에서 언급한, 냉장고에 절인 고등어가 들어 있다는 식의 얘기도 훌륭한 노래가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산울림은 잘 보여줬다.
즉 산울림은 대중가요의 지평을 거의 무한대로 확장했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은 내게 충격이었다.
원래 정치인은 말로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라고 알고 있었는데,
박대통령은 말을 안하고서도 맨 윗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까.
작년까지는 “말실수라도 하면 대통령 되는 데 지장이 있으니까 그러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여전히 말씀을 안하시는 걸 보면 기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5년 임기는 보장됐고, 재출마는 헌법상 불가능한데
남들이 무식하다고 놀리면 또 어떤가?
그럼에도 박대통령은 세간의 이슈인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는 등
웬만한 사안에는 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데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도 가뿐히 건너뛰었다.
더 놀라운 건 그에 대한 지지율이 65%라는 점.
말을 안한다는 게 오히려 신비감을 증폭시켜 맹목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걸 보면 앞으로 대통령이 되려면 묵언수행을 하는 게 어떨까,는 생각까지 든다.
박대통령이 정치인의 새로운 지평을 연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내가 해봐서 아는데” 같은 말로 임기 초부터 수많은 화제를 제공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내게 이런 날이 올지 미처 몰랐다).
최근 박대통령의 휴가지 기사는 내게 충격이었다.
원래 기사라는 건 뭔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을 때 내보내는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박대통령이 모래밭에 글자를 쓰는 것도 어엿한 한 편의 기사가 될 수 있다는 걸 우리 언론들이 보여줬으니까.
모래밭에 쓴 글귀도 ‘국정원 댓글 미안해’ 같은 의미있는 내용이라면 모를까,
‘저도의 추억’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쓴 게 왜 기사가 되는 걸까?
“청와대는 경호 문제를 이유로 휴가 일정만 알렸는데, 평소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해온 박 대통령이 직접 휴가지와 사진을 공개한 것으로 보입니다”는 설명도 어이가 없다.
묵언수행 중인 대통령이 모래밭에 글씨 좀 썼다고 “소통”이라면,
이전 대통령들은 소통을 넘어서 방언이 터진 거냐?
‘저도의 추억’을 비중있게 다룬 언론일수록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해 별 보도를 안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우리 언론이 기사작성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가보다.
소통을 위해 애쓰시는 박대통령에게 시 한편을 지어 바친다.
제목: 대통령과 고등어
장르: 자유시, 서정시, 칭송시
한밤중에 잠이 안와 인터넷을 열어 보니/
저도에 간 대통령이 모래밭에 글씨를 쓰네/
저도의 추억이/대문짝만하게 보이네/
대통령은 유신시대를 그리워하고 있었나보다/
나도 내일 아침엔 끌려가서 맞을 수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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