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그동안 전 대통령님이 용기와는 거리가 먼 분인 줄 알았습니다.

미국에게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인다든지(쇠고기 협상, FTA 재협상)

불리할 때마다 다른 사람 탓을 한다든지(전 정권 탓, 아랫사람 탓)

병역면제자들을 가까이 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용기 있는 사람의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대통령님께서 주로 하시는 “오해다”라는 말은

모든 책임을 말하는 이가 아닌, 듣는 이에게 전가시키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연평도 사격훈련을 보면서

전 제가 대통령님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격훈련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북한이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거기에 굴하지 않고 멋지게 화력 시범을 보인 것은

많은 국민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애기봉에 트리를 세운 것은

그 감동을 몇 배로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애기봉이 어떤 곳입니까?

북한이 가장 괴로워한다던 바로 그곳이잖습니까?

그제야 대통령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전쟁의 위협 따위에는 결코 굴하지 않는,

강하고 또 강한 분이셨습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이제 우리나라에 없습니다.

대통령님을 찍지 않은 저도 대통령님의 용기를 믿게 됐으니까요.

“민중과 그 적들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칼뿐이다”라고 했던 생쥐스트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님, 이제 위험한 일은 좀 그만 하시면 안될까요?

대통령님의 서슬에 북한 애들이 주눅이 들었기에 망정이지,

또라이 하나가 우리나라를 향해 총질이라도 해댔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대통령님의 용기에 감동하긴 했지만 사실 전 좀 무서웠습니다.

아내도 혹시나 전쟁이 나면 어쩌나, 그날 하루 종일 TV 뉴스만 봤다더라고요.

안그래도 요즘 뉴스에선 전쟁 관련 기사가 많이 나옵디다.

언젠가 본 9시 뉴스에서 “전쟁이 나면 우리 비행기가 떠서 어쩌고저쩌고” 하는 기사가

톱뉴스로 나오는 걸 보고 전율했습니다.

가뜩이나 피곤한 세상인데 우리가 이런 걱정까지 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대화로 가면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가 오는 것이냐?”는 이경재 의원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

이제 무력시위는 그만하면 됐으니 대화도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 날까 불안해 기생충 연구에 집중할 수가 없고,

그러다보면 기생충 감염률이 껑충 뛸 수도 있잖습니까?

서울 거리가 다 기생충으로 덮히면 좋을 게 뭐가 있겠어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신 우리 대통령님,

강을 다 파헤쳐도 괜찮고, 복지예산을 다 깎아도 할 수 없지만,

휴전선 부근에서 총은 그만 좀 쏩시다.

마음 편히 기생충 연구를 하게 해달라는 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는 아니지 않습니까?

대통령님의 용기를 믿고 이만 줄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