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다녀온 선배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도둑이 들어 1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갔는데,

그게 호주 신문에 크게 났다고.

그 나라는 범죄가 별로 없어서 그런 것도 큰 뉴스거리가 된다고.

호주를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해서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한 범죄는 기사화가 안될만큼 온갖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는 우리나라가 좀 신기하긴 하다.

 

 

 

엊그제, 우리 학교 교학과장님이 내게 물으신다.

“요즘은 왜 글을 안 써요?”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해보자.

총선이 끝난 뒤 난 좀 우울했다.

우리 유권자들의 끝까지 밀어주는 정신에 환멸 같은 걸 느껴서였다.

예컨대 15년 전,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맞아 IMF에서 돈을 꿔야 했다.

이런 정도의 사태가 발생하면 정권이 교체돼야 정상이다.

경제파탄만큼 서민들의 삶에 직격탄을 날리는 일이 또 있겠는가?

실제로 대부분의 나라들은, 심지어 우리가 정치 후진국으로 알고 있는 나라들도,

경제파탄이 나면 즉각 정권이 교체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하마터면, 이인제가 당을 깨고 출마하는 일이 없었다면,

집권당이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계속 권력을 잡는 이상한 나라가 될 뻔했다.

 

 

 

이번 총선은 외환위기에 준하는 사태를 계속 만들어 온 현 정권이 심판을 받는 무대였다.

물론 민주당도 잘한 게 없지만,

아무리 잘한 게 없어도 잘못한 게 많은 당에게 표를 몰아주는 그 현상을 난 이해하지 못했다.

투표를 통한 심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에서

집권당이 국민들의 눈치를 볼 이유는 없다.

현 정부가 4년간 딱 한가지만 빼고-인천공항 민영화-

모든 걸 자기 마음대로 한 건 그런 이유였다.

자기랑 친하다는 이유로 아무 자리에나 갖다 앉히고,

삽질도 원없이 해봤고,

이건 추측이지만, 돈도 원없이 갖다 써봤다.

자잘한 액수의 비리를 저질렀던 이전 정권들은 현 정부 앞에서 명함을 내밀 수가 없을 정도.

그 결과 정권 말기가 되자 그 비리들이 하나둘씩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원래 난 문대성의 논문표절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다가 제수씨를 성폭행하려던 모 국회의원에 대해 쓰는 게 좀 더 선정적이겠다 싶어 앞부분을 써뒀는데,

문대성이 탈당한다고 기자들을 불러놓고선 탈당을 안해버리자 역시 논문표절과 대필에 대해 쓰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현 정부가 추진했던 해외 자원개발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게 감사원의 감사결과 밝혀졌고,

나경원의 남편이 청탁전화를 하긴 했는데 그게 청탁은 아니라는 검찰의 결론이 나왔고,

최시중이 돈을 받았는데 그게 대선자금으로 쓰였다고 했고,

그 다음날엔 사실은 개인적으로 썼다고 말을 바꿨고,

집요한 전화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 김문수가 대권도전을 선언했고,

그 밖에 수많은 일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변명을 하자면 그 동안 난 놀았던 게 아니다.

글의 아이디어를 짜놓고 글을 써야지 하면 새로운 사건이 터져나와

그전 사건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게,

마치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를 걸어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졌던 거였다.

 

언젠가 “현 정권은 글 쓸 소재를 많이 줘서 칼럼 쓸 때 편하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소재도 적당히 줘야지, 너무 많이 주니깐 정신을 못차리겠다.

사회적으로도 이런 건 문제가 있다.

비리에 대해 불감증이 되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한 문제가 터지고 나면 한 일주일 정도는 거기에 관해 조사가 이루어지고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뒤 다른 사건이 터져야 하는데,

이건 매일같이 1면 머리기사가 바뀌니, 이전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김종익 씨 불법사찰에 관여한 게 밝혀진 이영호 씨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한데,

요즘 언론에선 그에 관한 기사를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이건 언론만의 책임은 아니다.

집권 기간 동안 검찰과 감사원, 그리고 야당이 제대로 역할만 했다면

이렇게 비올 때 폐기물을 방류하듯 동시다발적으로 비리가 터져나오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분은 바로 그분이다.

있는 사람이 더하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해준 그분께 질문을 하나 던진다.

“대통령님, 대체 왜 그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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