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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은 기생충

말라리아 예방약의 곤혹스러움

 

 

“인도네시아로 가는데 말라리아 예방약 어떻게 해야 해?”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반가움과 곤혹스러움이 교차한다.

매년 100-300만명, 전 세계에서 말라리아로 죽는 사람의 수는 생각보다 많다.

그 대부분이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들이긴 하지만,

동남아와 남미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에선 아직도 말라리아가 유행한다.

 

 

우리나라에서 ‘학질’로 불렸던 말라리아가 사람을 죽이지 않는 약한 말라리아인 반면

그 나라들에서 유행하는 말라리아는 소위 악성 말라리아로,

사람을 죽일 뿐 아니라 약제에도 저항성을 갖는지라 걸리고 나면 어쩔 도리가 없다.

방송을 위해 오지탐험을 갔던 탤런트 김성찬 씨도 말라리아로 숨진 바 있고,

세렝게티 등등 오지에 갔다가 말라리아에 걸린 여행자는 생각보다 많다.

수단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미국 배우 조지 클루니는

두 번이나 악성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한 바 있다.

 

 

해외의 유명한 관광지는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좀 한적한 곳으로 가는 사람이라면 필히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는 게 좋다.

통계적으로 여행객의 0.8%가 말라리아에 걸린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여행 전 말라리아 걱정을 하는 사람이 드문 건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은 큰 병원마다 해외여행자를 위한 클리닉이 개설되어 있고

http://www.cdc.gov/malaria/travelers/country_table/a.html

이 주소로 가면 국가별로 말라리아 위험지역과 먹어야 할 예방약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이를 참고하면 된다.

 

 

그럼에도 말라리아 예방약에 관한 문의가 곤혹스러운 까닭은

예방약을 먹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라리아의 표준 예방약은 클로로퀸이다.

우리나라 전방지역에는 지금도 약한 말라리아(삼일열말라리아)가 유행하는데,

그 때문에 전방에 근무하는 군인들에게는 클로로퀸을 나눠준다.

이 약을 먹으면 어지럽고 피부에 염증이 생길 수 있고, 결정적으로 탈모를 유발한다.

그래서 군인들 중엔 나눠준 예방약을 안먹고 버리는 경우도 많다는데

우리나라 말라리아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지라 쫓아다니면서 먹어라,고 하긴 좀 어렵다.

 

그래도 클로로퀸 정도면 부작용이 덜한 편이다.

웬만한 지역의 말라리아는 이 클로로퀸에 내성이 있어 다른 약으로 치료를 하는데,

내성 말라리아 지역에 가는 여행객들은 이 다른 약을 예방약으로 먹어야 한다.

문화공연차 나이지리아에 갔던 국립국악원 단원 중 두 명이

예방약을 먹었음에도 말라리아로 숨진 이유는 이 점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클로로퀸에 내성이 있을 때 쓰는 약 중 하나인 메플로퀸은 부작용이 더 심하다.

한 여행객의 수기를 들어보자.

“내가 느꼈던 증상은 두통을 동반한 어지러움, 온몸이 무겁고 무기력했고

속이 더부룩하고 메스꺼웠다.

저녁 먹으러 밖에 나갔는데 걸어다니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날 하루는 숙소에만 쳐박혀 있었다.“

여행을 가는 목적이 여러 곳을 구경하는 건데

예방약을 먹으면 구경은커녕 방안에서 온갖 고생을 해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

그래서 이 여행객은 다음날부터 예방약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이건 들은 얘긴데, 한 신혼부부는 이 메플로퀸 때문에

신혼여행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 채 누워만 있다가 돌아왔단다.

근데 이걸 여행 전부터 먹기 시작해서 갔다온 후에도 계속 먹어야 한다니,

차라리 유행지역에 안가는 게 낫겠다 싶다.

 

 

빨리 백신이 개발되면 좋으련만,

최근에 개발된 백신인 RTS,S의 효과는 50% 정도며, 그나마도 실험 단계라

당분간은 예방약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예방약을 먹자니 힘들고 안먹자니 무섭고,

말라리아는 이렇게 곤혹스러운 병이다.

 

참고로 말라리아는 모기에 물려서 걸린다.

말라리아 환자와 접촉한다고 옮거나 그러진 않는단 말이다.

성균관 스캔들의 다음 대사는 그래서 오류다.

 

 

다시 말라리아 유행지역 그림을 보자.

말라리아는 미국과 유럽 등 잘 사는 나라들을 절묘하게 피해가고 있다.

 

그러니 이런 결론이 나온다.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나라에선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우리나라가 비교적 잘 사는 나라가 된 것도 다 말라리아가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모기에 물릴 걸 걱정하는 대신

‘왜 대통령은 강바닥을 다 파헤치고 난리냐’ ‘인천공항은 왜 판다냐’

‘민간인 사찰의 배후가 없다는 걸 믿어야 하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죽고사는 문제보단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더 낫긴 하겠지만 말이다.

  • 부천남 2012.06.29 20:35

    아,,말라리아 예방약이라는것이 좀 무서운 것이군요..
    안맞을수도 없고,,,참 난감하네요..

    • 서민 2012.07.02 18:56

      말라론이라는 약이 그래도 부작용이 적다고 친구가 그러네요. 비싼 게 흠이랍니다ㅠㅠ

  • 열혈팬 2012.06.29 21:58

    남극의 눈물 김진만pd도 <아마존의 눈물> 촬영당시 말라리아 약을 먹으면 일을 할수 없을정도여서 모두 안먹기로 합의하고 팀웍을 위해 목숨이 달린 일인데도 약을 먹을수 없었다는 고충을 토로하는 것을 봤어요. 중1때 입원한적이 있었는데 옆병실에 있던 아이 한명이 뇌염으로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모기가 사람을 죽일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게 생각납니다....비할수 없지만 요즘 인천공항 매각도 못지않게 황당해요...하지만 12월이면 세상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꿈꿉니다. ^^ 그때까지 지치면 아니되셔요~

    • 서민 2012.07.02 18:56

      그런 일이 있었군요 흐음...
      인천공항 매각, 안한다고해놓고 왜 다시 추진하죠? 말년에 크게 한탕 하려나요?

  • seizetheday 2012.06.30 12:01

    유행 지역에 안 가는 게 답이겠군요. ^^:
    아프리카 여행을 꿈꾸고 있었는데 접어야겠어요.ㅠㅠ

    우리나라에서 말라리아 모기 물릴 걱정은 거의 없다해도
    위에 말씀하신 여러 걱정들로 중풍(혈압 올라서)이나 암(스트레스 때문에) 발병률은
    아무래도 당분간 늘 거 같아요. ㅠㅠ

    • 서민 2012.07.02 18:55

      안녕하셨어요
      그래도 유명 관광지는 괜찮습니다
      오지만 안가시면 안전하답니다.
      말라리아 모기에 준하는 걱정거리가 울나라엔 있죠 그렇다고 이민갈 수도 없구...

  • 책읽는달팽 2012.07.02 09:12

    서민 교수님. 글 잘 봤습니다... RNA로 이뤄진 바이러스도 변종땜시 제대로 된 백신을 못 만드는데, 바이러스보다 복잡한 기관을 가진 말라리아 원충은 더 그럴까나요... 군대때 전방에 잇었는데 클로로퀸도 있지만, 그 분홍약(아 이름 까먹었...)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뭐 어쨌든 유전병중 겸형 적혈구성 빈혈이나 지중해성 빈혈이 말라리아 놈때문이라고 들었는데(한국에도 지중해성 빈혈 환자가 몇명 있다고 듣기도 했고 말이죠), 인간은 정말 오랜기간동안 말라리아와 치열하게 싸워온듯 하네요... 근데 글을 보고 궁금한게 있어서 질문 드립니다.

    1. 지구온난화 환경에 처해있는 대한민국 상황에서 현재 삼일열 원충이 저 밑의 독한놈들과 싸워 이길수 있을까요? 아님 독한놈들이 다 점령할려나요?
    2. 자연선택을 이용한 약독화성 진화(맞나...)를 가속화 시킬 방법이 있나요? 있으면 좋을텐데 말이죠...
    3. 1번과 겹치는데 한국 삼일열하고 독한거 둘다 걸리면 어찌되나요...?(커헉)
    4. 매우 쓸모없는 질문 - 교수님 새 책 언제쯤 볼수 있을까요 헤헤(IP밴먹을 질문인가요?)

    • 서민 2012.07.02 18:55

      와앗 전문가 선생님이시닷!
      전문가 선생님으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무섭습니다....

      1) 온난화가 되면 악성말라리아가 유럽이나 기타 온대지방에서도 유행할까에 대한 논란이 있은 지는 꽤 됐습니다. 결론은... 그럴 것 같지가 않다,고 하네요. 특히 울나라는 겨울에 15도 이상을 계속 유지하는 게 불가능한지라, 열대열이 상륙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2) 말라리아랑 관계있는 진화는 모기가 아니라 사람에서 생겼습니다. 낫모양적혈구빈혈증이라고, 적혈구의 모양이 이상해지는 기형이 아프리카 지역에서 많이 나타나는데요 이 유전병에 걸리면 말라리아에 저항성을 갖게 됩니다. 말라리아에만 그렇다 뿐이지 실제로 그닥 좋은 건 아닙니다.
      3) 삼일열과 열대열이 둘다 감염되는 경우는 유행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뭐, 일단 클로로퀸 치료하고 안들으면 메플로퀸이나 섞은 걸로 치료합니다.
      4) 아 새책이요. 하핫. 제가 2005년까지 책을 열심히 내다가 내공을 기르고 쓰겠다고 마음먹었는데요, 그래도 2013년 전반기엔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지금 쓰고 있긴 합니다만 내용이 좀 뜬금없습니다^^

  • 서민 2012.07.02 18:57

    이런 글 쓸 때 주의할 점 한가지.
    객기를 부려서 "우리 각하는 왜 수단에 안가시는지 심히 궁금하다. 수단 대통령이 각하를 초청해 주면 좋겠다" 같은 글을 절대 쓰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건 객기죠!

    • 열혈팬 2012.07.02 20:23

      결국 댓글에서 빵 터뜨리시는...ㅋㅋㅋㅋㅋ 갑자기 먹튀하려는 나쁜 사람들 어디로 갈지 참~ 궁금하네요.

    • 기글즈 2012.07.26 03:33

      하하.. 저도 빵 떠졌어요 ~

  • 눈사태 2012.07.03 03:09

    서민님의 글을 이곳에서 보게된건 우연에 가까운데요,
    90년대 티비나오셨을부터 2000년대 딴지,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접하게되는 우연에 놀라고 있습니다.
    말라리아와 국가간의 관계는 참 미묘해요.그리고 격동의 시대와 각종 골칫거리를 안고 있는데도 말라리아까지 있는 우리나라였다면 정말 상상만으로 끔찍하군요.

  • 눈사태 2012.07.03 03:11

    그리고 질문인데요, 예전에 기생충 탐정 마태우스 되게 좋아했는데, 요즘엔 그거 안쓰시나요?

    • 기생충서민 2012.07.03 13:36 신고

      아 그러시군요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다,라는 말도 있던데^^ 글구 마태우스 기생충 탐정은 때려치웠답니다. 책으로 냈는데 하나도 안팔려서요^^

  • 91학번 2012.07.03 18:24

    교수님과 같은 학교 출신 91학번 후배입니다.
    서민 교수님이 기생충학 교실 조교님으로 활약하실 때가 생각납니다.슈퍼맨 슬라이드 감동적으로 봤었는데...
    같이 조교하셨던 여자 선생님들도 잘 계시나요? 모두들 한 미모 하셨었는데요.
    저도 직업 상 주변 사람들이라든지 환자에게 여행 가기 전에 필요한 예방 접종에 대해 많이 질문을 받는데,위에 교수님이 인용하신 뉴스 기사(잘못된 예방 약 먹고 말라리아 사망, 의사가 배상해야)를 보니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가네요. 저런 뉴스가 있었는지도 몰랐구요.
    언제나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써 주세요. 자주 방문하겠습니다.

    • 서민 2012.07.05 09:28

      아...선생님 안녕하세요.
      후배님의 댓글을 여기서 보니깐 반갑습니다.
      그때 여선생님들이 미모였던가...으음....
      저도 저 뉴스를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교과서에 있는대로 대답을 했다간-거긴 그냥 클로로퀸 얘기만 있거든요-큰일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암튼...좋은 예방약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딸기 2012.07.04 15:50

    ㅎㅎ 말라리아 얘기를 써주셨군요.
    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 출장 다니면서 말라리아 약을 5번을 먹었는데, 그건 정말 '사람마다 상황마다 장소마다 달라요'더군요. 그런데 국내 여행자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무슨 약을 먹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국내에서 처방받을 수 있는 것은 라리암과 말라론 둘 뿐이니까요) "말라리아에 걸리면 반드시 현지에서 치료하고 온다"라는 점이더군요. 한국에 돌아와서 감염 사실이 확인되면 재빨리 그 나라(감염된 곳)의 누군가에게든 연락해서 치료약을 공수받든가 해야된다는 거죠.
    부작용 문제는, 사람마다 부작용이 천차만별로 나타나기 때문에 '약 먹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게 맞는 듯합니다. 함께 약을 먹었던 선배 중에는 몸살증상을 겪는 분도 있었는데, 저는 미열이 나고 컨디션이 떨어지는 것 외엔 그리 힘들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몇번이나 반복되다보니 '말라론 먹기 싫어 열대지역 안 간다' 싶을 정도가 되더군요.
    국립의료원에서는 '말라론 몇 알 먹는 건 상관없다'고 하는데, 제 경우 여러 차례 먹다보니 눈이 안 좋아진 느낌... 거의 심증을 굳히고 있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말라리아 약 여러번 먹었다가 시력이 떨어졌다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고요.
    아프리카에서도 서아프리카는 극도로 말라리아에 취약한 곳이라 반드시 약 먹어야 하지만 한국사람 중 서아프리카 여행갈 사람은 없을 것이고... 동아프리카(관광지라 할 수 있는 케냐 탄자니아)는 사실 열대기후가 아니라서, 안심하고 가도 될 것 같아요.

    • 서민 2012.07.05 09:26

      어맛 딸기님
      이렇게 친절한 댓글을..!
      전 실제로 현장에 나가본 적이 없어서, 딸기님같이 몸으로 체험하신 분의 글을 읽으니 배우는 게 많네요.
      이건 심증인데요, 아프칸 주둔 미군이 총기난사를 했는데요 보건당국에선 그게 예방약의 부작용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해요. 그 이후 예방약 투여를 중단했거든요. 말라리아 백신이 개발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 기글즈 2012.07.26 03:32

      아..그렇군요..예방약 부작용두 있군요..ㅠㅠ

  • 눈사태 2012.07.11 18:29

    기생충관련 질문입니다.(어디다 하면좋을까 하다가 여기에 남겨요)

    요즘에도 구충제일년에 두번씩 먹어야하나요?

    구충제 계속 안먹고 있으면 몸의 기능이 시나브로 나빠지나요?

    • 서민 2012.07.13 16:04

      요즘엔 저얼대 구충제 자주 드실 필요 없습니다. 회 같은 거 좋아하시면 2년에 한번쯤 프라지콴텔 드시면 되는데요, 그게 의사처방 있어야 하는 거니 굳이 안드시겠다면 뭐, 4년에 한번도 괜찮습니다

  • 기글즈 2012.07.26 03:31

    아..그렇군요.. 저도 여행갈 때는 조심해서 예방약도 잘알아보고 가야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재미있는 영상 캡처들이랑 같이 있어서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