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장을 보러 갔다.
아내는 경주빵을 사려는데, 결제가 잘 안된다고 시간이 지체되는 사이
난 마트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무말랭이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난 무말랭이를 좋아하며,
무말랭이를 마지막으로 먹은 게 최소한 6개월은 더 지나 있었기에
갑자기 무말랭이가 확 당겼다.
가격은 6천원이니 수중에 있던 돈으로도 살 수 있겠다 싶었다.
“무말랭이 주세요.”
그러자 뒤쪽에서 스님(여자스님) 한분이 나오면서 합장을 한다.
잉? 웬 스님? 스님이 마트에서 알바를 하시나?
다시 반찬가게 앞을 봤더니, 이렇게 쓰여 있다.
‘사찰음식 판매’
무교지만 종교인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갖고 있던 나는 공손히 답례를 한 뒤 무말랭이를 달라고 다시 말했다.
무말랭이를 포장하던 스님이 이러신다.
“TV 잘 보고 있어요.”
세상에, 이렇게나 훌륭한 스님이라니.
일반인이 알아보는 것보다 스님이 알아봐주니 감격스러웠다.
순간 우쭐한 마음이 들어 스님한테 말씀드렸다.
“저...더덕도 좀 주세요.”
이것도 자랑은 아니지만, 난 더덕도 좋아한다.
그리고 마지막 더덕을 먹은 게 3년은 더 됐을 것이다.
하지만 스님이 날 알아보지 못했다면, 더덕을 사는 일은 없었을 거다.
거기 쓰여 있는 더덕의 가격은 1만5천원이었기에,
지갑에 들어있는 3만원으로 충분히 계산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때 어렵게 계산을 마친 아내가 경주빵을 들고 다가왔다.
“여보여보! 여기 스님한테 인사 드려! 나 지금 무말랭이랑 더덕 샀어.”
스님은 아내에게 합장을 한 뒤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말랭이랑 더덕, 모두 합쳐서 7만7천원입니다.”
잉? 2만 1천원이 아니고 치치칠만원?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다시금 반찬가게 앞을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무말랭이 100g에 6천원, 더덕 100 g에 1만5천원“
어머니가 불교인데 자신은 천주교를 믿는 아내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면서 날 향해 눈을 흘겼다.
“있다가 봐.”
장을 보고 난 후 아내와 회전초밥을 먹을 계획이었다.
가는 동안 난 아내한테 싹싹 빌었고,
일부라도 갚자는 마음에서 회전초밥집 초밥을 원래 계획했던 것의 3분의 1 가량만 먹었다.
그것도 접시 색깔을 꼼꼼히 따져가면서.
착한 아내는 이렇게 날 위로했다.
“더덕은 원래 좀 비싸. 그리고 재배하는 데 신경써서 한 거니, 더 비싼 것도 당연해.
여보가 잘 먹으면 돈 아깝지 않아.“
그로부터 4일째, 내 저녁 메뉴는 밥 한 그릇에 무말랭이와 더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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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니 군침이도는군요.
맛나게 잡수십시요.^^^
식성이 저랑 비슷하신 듯 보이십니다.
아 그러시군요 언제 무말랭이에 소주한잔ㅅㅅ
넵!
꼭,그럴 기회가 얼른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 잘 챙기십시요.
안녕하세요. 사회생활 하다가 최근에 대학원을 다니면서 대학 사회를 멀리서나마 보게 되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대학 교수하면서 학문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 학생들에 대한 애정 등 귀한 가치를 계속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게 참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의대 교수까지 하시면서 이런 소탈함과 인간미를 발하고 계셔서 참 좋구요,, 존경스럽습니다.
남은 반찬도 끝까지 맛있게~ 드세요~~
더덕 좋아 하시는군요~
저는 더덕주 좋아 하는데^^
더덕을 소주에 담그는 더덕주 말씀하시나요?
소소한 이런 이야기도 좋네요^^
훈훈합니다. 교수님
자랑은 아니지만 저도 무말랭이와 더덕 좋아합니다.*^^*
무말랭이와 더덕반찬 저녁식사는 앞으로 며칠이나 더 드셔야 하나요?ㅋㅋㅋ
정말 맛있어보이는걸요?ㅋ아내분께서 진심 사랑하시나봅니다^^울신랑이 그랬다면?하는 상상을 해봤거든요^^
무말랭이와 더덕ㅎㅎㅎㅎ
정말 맛있는 밑반찬이죠.
저는 무 사다가 말려서 무말랭이 만들고,뒷마당에 도라지 더덕 농사짓는답니다.
울남편이 너무 좋아하거든요.
근데,
그로부터 4일째 저녁메뉴는 무말랭이와 더덕이다.
그래도 맛있게 드세요.
존경하는 교수님!!
어려운 글에는 댓글 달을 수준이 안되는데 이런 이야기라면 할말이 있네요
참 비싼 무말랭이와 더덕무침을 드시게 됐네요
그래도 저렴하고 서민적인 반찬을 금값에 사주셨으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교수님은 뭐가 달라도 많이 다르시네요
막 정이 갑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
제겐 참으로 달달한 추억의 무말랭이와 더덕무침입니다.
아이들이 모두 자라서 제자리들을 찾아간 후라 반찬걱정은 안해본지라~~ㅎㅎ
저두 그게 언제쩍에 해봤는지 까마득하네요..
오늘주말 무말랭이와 더덕무침을 한번 만들어서 아들녀석들에게 가봐야겠네요
아~ 벌써 행복함이 느껴지는건 왜일까요??
흠~ 교수님 덕분이에요 좌파교수님 덕분에 행복하면 저두 좌파인거죠?
예전엔 좌파그러면 별루 좋은느낌 아니였는데
요즘은 왠지 자꾸 좌파가 좋아져요..
좌파교수님 수고하세요 행복하시구요 저는 마트말구 전통시장으로 고고씽 할랍니다.
무말랭이와 더덕사러~~~
더덕은 구워야 제맛이죠..
지리산 입구에 파는 더덕이 가짠지 진짠지 모르겠지만,
그 곳에서 먹는 더덕구이를 가장 좋아합니다.
갑자기 뜬금없지만, 무말랭이도 구워먹으면 어떨까 생각이 되네요..
경상도에선 오부락지라 합니다.
서민 교수님은 서민이라 좋습니다.
존경합니다.
컬투쇼 듣고 운전중에 미친사람처럼 웃었네요 ㅎㅎ
잊을수가 없어 블로그에 들어와 봤는데
매력 터지세요 ! 토욜오후에 큰 웃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헤어스타일이 너무 매력적입니다.
무말랭이와 더덕 이야기도 소탈하고 글들이 재밌습니다.
건강하세요!
이렇게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는데...
정치를 싹 잊고 살아갈 수 만 있다면...
잘 읽었습니다.
오늘 처음 들어와봤는데 메인에 떠 있길래 읽었어요 ㅎㅎ 마지막에 진짜 빵 터졌다는 ㅋㅋㅋㅋ 훈훈하게 끝이 나는가 했더니만 ㅋㅋㅋ
스님한테 한방 드셨네요 ㅋㅋ 욕쟁이 할머니가 손님이 싸게 해달라고하니 "고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가 생각이 나네요 ㅋㅋ
에세이도 넘 재밌어요.^^
비밀댓글입니다
너무 재미있는 글 잘 읽고 가요^^*
저도 아버지 암투병중에 롯데잠실백화점 지하에서
사찰음식 좋다고 스님에게 잡혀
곰취 장아치와 연근,다시마,감자,고구마등등 부각같은 간식거리
나쁜거 하나도 안넣다고 좋은거라는 말에
계산하려고보니 10만원 정도? 헉-해서 양좀 덜어서 사도
5만원인가 7만원정도 했던거 같아요 ㅠㅠ
순간 스님이 진정 맞나? 사기꾼은 아니겠지?
뭔가 낚인듯한 복잡한 심경이였어요 ㅠㅠ
다시는 못 사먹을 가격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