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님이시죠? 문대성입니다.”
그의 이름을 듣고도 별로 동요하진 않았다. 그 문대성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연결지어 생각하기엔 너무 오랜 세월 문대성을 잊고 살았으니까. 그저 변에서 몇십센티짜리 기생충이 나왔다든지, 아니면 아들의 항문에서 요충이 나온 중년 남성으로만 생각했다. 내가 반응이 없자 그는 좀 서운했나보다.
“저.. 태권도 선수 문대성인데요, 2004년 아테네에서...”
그 말을 듣자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포츠스타한테 전화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허공에다 인사를 하면서 영광이라고 했더니 그는 그제야 기분이 좋아진 듯 호쾌하게 웃었다.
“근데 무슨 일이신지..?”
“좀 뵙죠.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다음날 오후, 난 문대성과 연구실에서 마주앉아 있었다.
사진으로 본 것보다 좀 더 잘생겼고, 체격도 훨씬 컸다.
“제가 박사학위를 따야 하는데요”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논문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구요. 그런데 주위에서 선생님을 추천하더군요. 그래서, 좀 도와주십사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의 말에 난 고개를 갸우뚱했다.
“석사논문은 쓰셨으니까 박사과정에 들어오신 거 아닌가요?”문대성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게요, 사실은 제가 쓴 게 아닙니다. 아는 학생이 써준 겁니다. 죄송합니다.”
그 말에 난 적잖이 당황했다.
“아, 제가 그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요...”
그가 왜 나를 택했는지 궁금했지만, 얼마나 어려우면 생면부지의 나같은 사람을 찾아왔을까를 생각하니 더 묻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일단 주제를 정해야죠. 논문은 주제만 정하면 70%는 다 해결된 겁니다.”
“선생님은 기생충학자신데, 태권도에 대해서 쓰실 수가 있습니까?”
난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거야 생각하기 나름이죠. 연구라는 건 재료만 다를 뿐,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태권도와 기생충도 얼마든지 연결을 지을 수 있지요.”
난 그에게 참굴큰입흡충에 대해 설명했다. 신안지방의 굴에는 참굴큰입흡충이라는 게 있는데, 사람은 그 굴을 먹고 걸린다, 크기도 아주 작고 아직까지 인체에 큰 해는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 기생충을 이용해서 한번 연구를 해보자...
“참굴큰입흡충을 태권도 선수 10명에게 먹인 다음 며칠 만에 이 기생충이 완전히 빠져나가는지를 조사합니다. 그리고 일반인 10명에게도 참굴큰입흡충을 먹이고, 이 기생충이 빠져나가는 시간을 측정합니다. 이 둘을 비교해서 태권도라는 운동이 면역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면, 그 자체로 좋은 논문이 될 수 있죠.”
문대성은 안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아, 그렇군요!”
“기생충이 있는지 없는지는 제가 조사할테니, 문선생님은 사람을 모으고 기생충 먹이는 걸 도와주세요.”
문대성은 호탕하게 웃었다.
“걱정 마이소. 제 말 한마디면 열명 아니라 백명도 자신 있습니다.”
자신이 호언장담한대로 문대성은 태권도과 졸업생을 150명이 넘게 모았고,
일반인들도 100명 넘게 몰렸다.
그들은 문대성의 학위논문을 위해 기꺼이, 신안군에서 나온 굴을 초장에 찍어 먹었고,
그 뒤부터 이틀마다 대변을 나한테 보내줬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태권도는 면역성을 약간 증강시켰다.
대변검사로 충란을 검사하는 방식으로 충체가 우리 몸에 머무르는 시간을 측정한 결과
일반인에서는 두달 가까이-평균 56일-대변에서 충란이 나온 반면
태권도 선수들은 평균 37일만에 충체를 모두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주, 2주와 4주째 혈액을 채취해 분석을 한 결과
면역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T세포의 숫자가 태권도 선수들에서 훨씬 더 많았고,
여기 관여하는 싸이토킨의 농도도 유의하게 높았다.
미흡하긴 해도 이 자료를 가지고 박사논문을 써보라고 했다.
문대성은 난감해했다.
“어려울 거란 건 압니다. 일단 써오기만 하세요. 제가 다 고쳐드리겠습니다.”
문대성이 써온 박사논문의 서론은 이랬다.
“참굴큰입흡충은 굴애 사는 기생충이다. 먹어도 헤가 업다. 그래서 태권도 선수들애개 먹었다.
좀 더 빨리 변검사가 안나왔다....”
그가 써온 논문을 구겨서 버리려다
그래도 자기 손으로 처음 써본 논문인데 그러면 안되지,란 생각에 책상 위에 잘 놔뒀다.
논문을 쓰는 데는 꼬박 사흘이 걸렸다.
하루 동안 더 손을 본 후 택배로 문대성에게 보냈다.
그 이후엔 그가 알아서 하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난데없이 내가 심사위원에 위촉이 됐으니까.
심사위원의 역할은 학위생을 까는 건데, 내가 도와준 연구를 스스로 까는 것도 웃겨서 가만히 있었다.
거기에 더해 누가 질문을 할 때마다 문대성을 대신해서 답변을 해줬다.
그렇게 두 번의 심사가 끝난 후 문대성은 박사학위를 받았고,
박사학위 논문의 내용은 매스컴을 통해 공표됐다.
“태권도 배우면 기생충 안걸린다-----올림픽 금 문대성 씨 주장”
그 기사가 나간 후 전국의 태권도장은 몰려드는 아이들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그 뒤 문대성은 동아대 교수로 임용됐고, 거기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교수로 임용된 지 6년간 동아대 태권도학과는 8명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그는 해마다 설이면 내게 신안군에서 나온 굴을 보내주는 기특한 제자였다.
몇달 전 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박사논문을 제 손으로 써보니 연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고.
요즘엔 가르치고 연구하는 재미로 산다고.
전화 말미에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참, 새누리당에서 저를 국회의원에 공천한다고 하더라고요.
난 연구와 강의만 해도 바쁘니 괴롭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하하.”
이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만은, 문대성은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연구에 잔뼈가 굵은 다른 사람에게 전화한 것도 아니었다.
그 대신 그는, 이건 순전히 추정이지만, 다른 이에게 대필을 부탁했고,
대필을 해준 그 사람은 불행하게도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대필자는 다른 이가 쓴 논문을 거의 그대로 베껴서-심지어 오자까지도-문대성에게 줬고,
그 학위를 발판으로 문대성은 동아대 교수가 된다.
그는 교수가 된 지 6년만에 새누리당의 국회의원 공천을 받는데,
이건 교수 자리가 자기 힘으로 만든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서 거기에 별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자기 힘으로 교수가 된 이들도 공천을 준다면 좋아라 달려들긴 한다).
그리고 갑자기 불어닥친 표절시비. 그는 정말 억울했을 거다.
그 자신은 남의 논문을 베낀 게 아니었으니까.
대필자란 인간이 그런 짓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까.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지역감정 덕분에 그는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동아대에는 사직서를 제출해야 했다.
그의 학위가 가짜란 걸 모두 아는 까닭에 앞으로 그가 대학에 자리를 잡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4년 후, 인기가 그전보다 많이 떨어진 그가
또다시 부산에서 공천을 받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이게 다, 그가 나한테 전화를 안한 까닭이다.^^
* 결론 부분을 보면 글쓴이가 굉장히 과대망상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에 대선에 나가겠다고 한 것도 농담이 아니었고, 비례대표 32번도 진짜였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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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다 알지만 혼자 자기가 썼다고 우기는 것이 더 웃기더군요.
그 대필한 사람도 더 웃겼지요. 베껴서 대필해 주다니~
대필만 있을까요? 외국 학위 위조는 어떻구요~~
우리는 속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ㅎㅎ
항시 글 말미엔 안 잡혀 가시려고 한문장을 더 다시네요 ^^
그러게요 전 그 대필자가 더 나쁘다고 봐용. 외국도 그런 게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제가 잡혀가면 안되죠. 처자식이 저만 바라보고 있는데요^^
ㅎㅎ 오늘도 즐겁게 읽고 갑니다.
언제나 명쾌한 문장입니다.
즐거운 휴일보내세요 ~~~
아 네...안그래도 하늘이 파랗던데 파란하늘님이 댓글 달아주셨네요 감사감사.
'굴애사는" "헤가업다" 켁~ 아이고 우스워라. 그래도 박근혜아줌마의 "위장전업" "이산화까스" 보다는 낫지않아요? 수첩에 적어준거도 똑바로 못읽는데 ,그래도 복사 제대로 했잖아요
호호 위장전업은 정말 히트였죠. 그나마 수첩도 없었으면 히트작이 더 나올 뻔...^^
농담이었는데 사실인줄 알고 혼자 진지하게 읽었네요. ㅋ
최근에 경향신문에 능력있는 내연남 김재철 칼럼 무척 재미있게 봤어요 ㅎ
앗 진짜인 줄 아셨군요! 이상하게 "낚았다"는 묘한 기분이...^^ 글구 내연남 칼럼은 노조가 만든 뉴스를 그대로 쓴 것에 불과하답니다. 날로 먹었다고 할까요..
마지막 팬서비스 표지사진까지...떼굴떼굴 구르며 웃다 배꼽 잃어버렸습니다^^
하핫 저 사진, 저도 보면서 웃기더군요^^
요새 저의 고질병인 허리 디스크가 또 도져서
우울해 하고 있었는데 쌤 글 읽고 웃다가
다시 기운을 회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민쌤 짱짱짱!!!
아이고 초초님
디스크를 고질병으로 갖고 계시다니,
이왕 하나를 가져야 한다면 저처럼 알레르기성 비염 같은걸 택하셨어야죠...!
어여 회복하셔서 다시 요가도 하고 그럴 수 있음 좋겠네요.
하하하..역시 촌철살인이네요..ㅋㅋ
부천남님
촌철살인까지야, 과찬이십니다^^
잘 보고 갑니다.^^
아인슈타인 닮으셨어요!
반전이 핵을 이루는 교수님의 글을 읽고 이런 아이디어를 좀 공유할 수 있을까 욕심이 나는군요.
기생충과 태권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주제로 풀어나가는 그 명필에 감탄입니다.
우리는 체면을 접은지 오래 된 것 같아요.
아니 4년여 전에는 이런 몰상식한 인간들을 볼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만일 부도덕과 불의를 그대로 안고 가면 네티즌들의 질타를 견뎌낼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요즘은 그 이상의 질타를 받아도 모르쇠니 시대가 시대인지라 그에 걸맞는 변명거리로 견디나봅니다. 정권 초기에 청문회에서 본 '이국적인' 장면들부터 시작해서요. ㅋㅋ
아주 뻔뻔하던데 문대성도 그런 뻔뻔함이 그의 영혼에 지문으로 찍힌 것 같습니다.
찍어준 유권자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지 참 엿같은 세상에 산다는 것이 왜 이렇게 불편하고 분노가 이는지 정말로 참기 힘드네요.
대통령님부터 체면을 신경안쓰는데 다른 사람들이 쓰겠어요. 흠결이 있어도 뽑아주는 것도 참 이상하긴 합니다만.... 답답한 세상입죠
교수님의 농담에 매번 당하는 1인 ㅋㅋ
마지막 책표지 보고 빵터졌습니다. 이렇게까지 남들을 웃기기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싶네요. 교수님의 개그본능에 항상 재밌게 웃고 갑니다.
와우~ 소설에도 탁월한 재주가 있으시네요 ^^
소설도 현실을 바탕으로 해야 더 공감이 가죠~
매우 현실적인 소재로 주제를 잡아서 무지 재밌네요 ㅎㅎ
그나저나 석사 기말논문 쓰는중인데
문대성 덕분에 양심상....짜깁기, 과도한 인용, 표절...안하려고 노력중이다보니
한글자 한글자 창작하기 참~ 어렵네요 ^^
학위논문 쓰는 거 정말 힘들죠
남의 것을 참고하긴 해도 창작이란 기본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거니깐요!
좋은 논문 쓰시길 빌게요
ㅍ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희 큰애가 체대를 가고싶어 하는데 혹 박사까지 간다면 꼭 샘께 연락드리라고 하겠슴다.
특기생이 아니라서 메달을 딸 가능성이 없으므로 '금'은 돌반지를 녹여서 보내도 되겠죠?
아앗 전 반지 없어도 되는데요^^
박사 하시게 되면 연락주세요 공동연구 함 해보죠!
읽는 내내 연암 박지원의 소설이 떠오르네요. ^^ 능청스러운 글발이 최고십니다. 교수님은 만인의 엔돌핀!!
칭찬 감사드려요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꾸벅.
* 만인의 엔돌핀은 아닌 것 같아요 요 아래 참수리 님 댓글을 보니깐...ㅠㅠ
놀고 자빠지고들 있네요 진짜들.. 표절을 했건 안했건 까고 말해서 의원직 가기전까지 부정부패 안저지를 이 썩어빠진 정치인 새끼들이 몇이나 될까? 돈지랄 하고 뒷돈 맥이고 존나 다 똑같이 지랄하는데 문대성만 이렇게 까는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이렇게 비방하는거 자체가 너무 한심한거 아닌가? 괜히 지는 올라가보지도 못할 나무니깐 괜히 자괴감에 욕만 존나게 하는거아냐? 진짜 보다보니 어이가없다 어이다 없어 까고들있다 아주
아이고 들켰네요... 사실 신문에도 크게 나고 기자회견도 하는 문대성이 부럽긴 합니다. 왜 저한텐 관심을 안가져주나 하는 마음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님은 정말 쪽집게십니다. 앞으론 자중하겠습니다.
ㅍㅎㅎㅎ~
서민님 매우 대인배이시군요 ~
존경합니다 ^^
하하 마지막 반전이 기가 막힙니다.^^
자주 들르겠습니다.
글 잘봤습니다 저는 짐 학사 논문 써야하는데도 막막합니다 그래도 연구논문식은 아니니 부담이 조금 덜합니다. 스스로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ㅎㅎ 세상은 정직하게 살아야 하자나여 ㅎㅎ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고요
하필이면...새누리당에 입당을 했을꼬;;;
문대성 아테네 올림픽 뒤돌려차기 정말 통쾌했는데..
하필이면..새누리당에 입당을 했을꼬..
ㅋㅋㅋㅋ*백만개= 서민
디테일까지..ㅎㅎ 태권도 학원이 몸살을 앓고,, 설마다 굴을 보내는 제자,,
문대성 모르면 진짜 낚일 사람 많을거예요. ㅎㅎ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