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준과 공직자들

 

박현준은 2011LG에서 13승을 올리며 신데렐라가 됐다.

직구와 포크볼, 슬라이더가 주무기인데

특히 직구의 궤적이 워낙 까다로워 포수 조인성마저 잡기가 힘들다고 할 정도였다.

그 박현준은 지금 야구판에 없다.

승부조작에 연루되어 2012년 영구제명됐기 때문.

상대팀 첫 타자가 볼넷이냐 아니냐를 놓고 심심치않게 도박판이 벌어지는데

거기서 박현준이 돈을 받고 고의로 볼넷을 내주곤 했다는 거다.

첫타자에게 볼넷을 준다고 해서 승패에 아주 커다란 영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정직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하는 야구판에서 그의 영구제명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나라에서 뛰다 일본에 간 리오스가 약물반응에 양성이 나와

팀에서 퇴출된 거라든지,

전설적인 강타자 배리 본즈나 맥과이어가 스테로이드를 썼다는 이유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페어플레이를 중시하는 스포츠계에선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스포츠계에서 페어플레이가 생명이라면, 학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함이다.

논문심사를 할 때 학자들은 자신의 동료가 실험결과를 조작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 결과를 의심함으로써 치러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기도 하지만-직접 실험을 재현해 봐야 조작 여부를 알 수 있잖은가!

기본적으로 학자들은 진리탐구라는 어려운 일에 뛰어든 둉료들에게 어느 정도 존경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계에서 결과를 조작하거나 남의 논문을 베끼고 한 논문을 두 번 게재하는 일 등은 학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범죄 행위로,

스포츠의 승부조작에 준해서 처리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공직인사 때 보면 학계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논문 관련 부정행위가 많은지 기가 막힐 지경이다.

 

윤성규 환경부 내정자는 현대건설에서 데이터를 받아서 박사학위논문을 썼는데,

그나마도 현대건설 측에서 쓴 논문과 문장이 비슷해 표절시비가 불거졌다.

박사실험을 스스로 안하고 남이 한 데이터로 논문을 쓴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똑같은 데이터로 저는 해석을 달리했다며 별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태도가 기가 막히다.

교수직에서도 당장 사퇴해야 할 인물이 공직을 하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걸 보면

동료 김성현 선수의 빚 때문에(1) 첫 타자에게 볼넷을 내준 박현준이 왜 제명당했는지 억울할 지경이다.

 

학계 사람이라 할 수는 없지만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연세대 이종수 교수가 1996년 한국행정학보에 실은 논문을 상당부분 베꼈다.

구체적으로 허 내정자는 이 교수의 논문 6쪽을 그대로 베꼈으며 이 교수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지방정책의 결정에 대한 3차원 모형'도 영문을 한글로만 바꿔 게재했다.

또 허 내정자는 연구 결과의 시사점과 한계까지 이 교수의 논문을 베꼈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허 내정자는 논문 작성 당시 논문 작성 방법이나 연구 윤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연구 윤리 기준을 충실히 지키지 못한 점 참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면서 머리숙여 사과했지만,

남의 것을 베끼면 안된다는 건 연구윤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 아닌가?

이런 식이면 박현준이 당시 스포츠윤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볼넷을 내줬다라고 하면 봐줘야 하는 게 아닌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숨어 있어서 미안해라는 그의 페이스북 글을 보면 그저 마음이 아프다.

그가 죄를 지은 건 사실이지만, 지금 공직후보자로 올라와 있는 사람들의 당당한 태도를 보면 그가 숨어다녀야 할 이유가 뭔지 헷갈린다.

현준아, 더 이상 숨지 마.

죄값을 치를 마음도 없는 사람들이 천지인 세상에서, 죄값을 치른 내가 도망다녀야 할 필요는 없지 않니?

 

1) 박현준은 동료 김성현 선수의 빚 때문에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보기


 

2) 윤성규 내정자와는 달리 서승환 국토부 장관 내정자는 억울할 만도 합니다. 보고서는 엄연히 논문과 다른 차원의 것으로, 보고서의 내용을 그대로 논문으로 출판하는 건 관행을 떠나 학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