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개봉했던 영화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박신양은 아내 최진실을 남겨둔 채 뇌종양으로 죽는다.
실의에 빠진 최진실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하는데, 놀랍게도 그건 박신양이 보낸 편지였다.
자신이 죽으면 아내가 너무 슬퍼할까 걱정한 박신양이
자신의 죽음 이후를 가정하고 미리 편지를 써놓은 거였다.
그 후로도 계속 도착한 편지 덕분에 결국 최진실은 실의에서 벗어나 살고자 하는 의지를 다진다.
이 영화를 감명깊게 본 사람은 나뿐만은 아니었나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퇴임 이후 국민들이 자신을 너무 그리워할까봐
자신을 환기시킬만한 장치를 곳곳에 설치해 뒀다.
대표적인 게 4대강 사업.
강이 녹색으로 변하거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거나,
공사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는 등등의 뉴스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아, 맞다. 각하가 있었지!”라며 그를 머리에 떠오른다.
참고로 그분은 내가 각하라고 부르고 싶은 유일한 대통령인데,
그분께서 워낙 소재를 많이 제공해 준 덕분에 내가 칼럼니스트로 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가 급상승 중인 팟캐스트 <밥 한번 먹자>를 듣다가도 각하가 떠올랐다.
첫 번째 편은 한식 세계화를 집중 조명했는데,
2억원을 들여 블루베리전을 개발했다던지,
십억원으로 허접하기 짝이 없는 한식세계화 홈페이지를 만든 것,
파프리카가 우리나라 대표음식인 것처럼 해놓은 동영상을 몇십억을 들여 만든 일 등은
“과연 각하다!”라는 감탄이 나오게 만드는데,
각하는 한식세계화에 아낌없이 돈을 씀으로써
자신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랐던 것 같다.
죄송하지만 이렇게 좀 말해야겠다.
이런 순정남 같으니라고.
얼마 전에는 돈세탁 기사가 다시금 각하를 추억하는 계기가 됐다.
각하가 2011년 아랍에미레이트 정부로부터 환경상을 받았는데,
그 상금이 50만달러나 됐다.
정부는 이 상금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이 환경 분야 등에 기부하거나 쓸 예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알고 보니 이 돈은 전액 이 전 대통령 개인 통장으로 입금됐단다.
뭐, 자신이 만든 4대강 주변을 자전거를 타고 도는 것도 ‘환경 분야’에 포함되겠지만,
이 과정에서 농협을 동원해 돈세탁을 한 정황이 포착된 게 문제였다.
한 네티즌의 설명이다.
“농협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해외에서 수상한 상금의 수표가 채 입금되기 전에 이를 매입해 이명박 전 대통령 계좌로 송금했는데요.
이는 공직자법(해외에서 받은 금품신고)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네요“
주간한국에 실렸다가 급하게 삭제된 이 기사를 보면서 사람들은
“아 그래, 각하는 정말 돈을 사랑하는 분이셨어”라고 한 마디씩 했으리라.
박신양이 보낸 편지는 감동적인 비디오를 포함해도 열 통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각하가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며 곳곳에 심어놓은 장치들은
최소한 백 개는 더 될 것으로 보이니,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다음 세대, 어쩌면 그 다음 세대까지도 각하를 두고두고 추억할 것 같다.
이렇게 말이다.
아들: 저곳은 라떼 공장인가 봐!
아빠: 얘야, 저기는 강이란다. 이명박이라는 분이 라떼공장으로 바꿔놨지.
아들: 정말 대단한 분이지.
각하, 당신이 그만둔지 1년밖에 안됐는데 벌써부터 당신이 그립습니다.
회고록 열심히 쓰고 계시다니, 그거라도 읽으면서 당신을 추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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