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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은 기생충

병원오케스트라의 꿈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린 음악회.

 

2년 전, 병원에 두 차례 입원을 했었다.

처음엔 닷새, 두 번째엔 열흘 가량 있었으니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 기간은 내게 힘든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런저런 치료를 받는 게 가장 힘들었지만,

무료하게 누워만 있어야 한다는 것도 힘들었던 원인이었다.

그럴 때에 대비해 책을 잔뜩 가지고 갔긴 했어도,

몸상태가 좋지 않으니 책에 집중하는 게 힘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누군가 문병을 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문병객이 떠나고 나면 마음이 휑~해졌다.

 

 

언젠가 병원 로비를 지나는데 로비가 이상하게 시끌벅적했다.

어느 단체인지 모르지만 로비 앞 무대에서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한단다.

공연 한 시간 전임에도 환자와 보호자들이 무대 앞 의자를 빼곡이 채우고 있었고,

그들의 얼굴은 간만의 공연을 본다는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공연 때 가보질 않아서 그때의 공연이 그 기대를 충족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류의 공연이 환자와 보호자들의 무료함을 달래 주리라.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비단 무료함에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12, <Dimension and ciritical care nursing>이란 학술지에 이런 논문이 실렸다.

음악치료: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들의 불안감을 줄여준다는 제목의 이 논문 중 일부를 옮겨본다.

중환자실에서 불안한 환자들에게 진정제나 진통제로 치료를 하는데, 이 약제들은 부작용이 있어 구토, 장운동 감소, 소변을 못봄, 감염에 취약한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다보면 인공호흡기를 쓰는 기간이 늘어나고 사망률도 증가한다.”

하지만 음악은 우리의 심신을 치유해 주는데, 피타고라스라는 철학자는 벌써 이를 깨닫고

환자들에게 음악을 처방하곤 했단다.

여러 논문들을 종합해 정리한 이 논문에 따르면 음악을 틀면 환자들의 혈압과 심장박동수,

불안의 정도가 모두 감소하는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났단다.

그러면서 이 논문은 음악치료가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면서

다만 어떤 음악을 얼마 동안 틀어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게 숙제라고 결론지었다.

 

                                 음악치료 시간과 심장박동수

               

 

 

 

                                 음악치료 전후의 불안지수 변화

 

 

치료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의 무료함을 달래주기까지 하는데

병원에서는 왜 이런 좋은 방법을 쓰지 않는지 모르겠다.

한 병원에서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건 부담스러울 것이니 아이디어를 하나 내보면,

내가 근무하는 충남 지역엔 큰 병원이 몇 개가 있는데 -건양대, 충남대, 충북대, 단국대, 순천향대, 백제병원 등등-

대략 이 병원의 숫자를 열 개라고 치자.

이 병원들에서 월 천 만원씩을 각출해 오케스트라를 만든다.

가칭 충청오케스트라로 이름붙여진 이 오케스트라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돈을 댄 병원들을 돌면서 공연을 한다.

일주에 이틀은 새 곡을 연습하고, 나머지 사흘간 하루 서너 군데씩 공연을 하는 식으로 하든-이러면 각 병원은 매주 한번씩 차례가 돌아온다-

아니면 2주마다 한번씩 차례가 돌아오게 하든, 그거야 정하기 나름이다.

이 경우 환자와 보호자들은 그 다음번 공연을 기다리게 되고,

뭔가 기다리는 게 있다는 건 삶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는 긍정적 영향을 준다.

이게 좀 더 확대되어 각 도마다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지고,

이들이 전국 병원 순회를 다닌다면 보다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접할 수 있게 되어

환자들의 즐거움을 더해줄 것이다.

음대를 나왔는데 교향악단에 자리가 없어 아쉬운 분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이게 일자리 창출에도 어느 정도는 기여하지 않을까?

물론 일년에 일억씩 돈을 내놓는 병원이 대체 얼마나 될 것인지 회의적이긴 해도,

이걸 소비적인 돈으로 생각하지 말고 환자 치료의 일환으로 생각하면 어느 정도 설득이 가능하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충청오케스트라의 모습을 그려보니 괜히 가슴이 벅차온다.

 

꿈은 꿈꾸는 사람의 숫자만큼 빨리 실현된다.

지금은 턱도 없는 헛소리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병원오케스트라의 꿈을 꾼다면,

언젠가는 병원마다 무대가 만들어지고, 거기서 정기적인 공연이 이루어지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 열혈팬 2013.03.18 21:37

    오랜만에 1빠~~~팡파레를 울려주세요ㅋㅋ 생각만해도 마음따뜻해지는 아이디어입니다. 한달에 한번은 꼭 병원에 가는 저로서는 정말 실현되었으면 싶은 꿈이네요 힘들때 좋은 음악은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되곤 하지요^^

    • 기생충서민 2013.03.18 23:01 신고

      어머나 열혈팬님 한달에 한번씩 병원에 다니신다구요. 어여 쾌차하셔서 병원 안가시길 기원합니다. 병원은 자주 갈 곳이 아니더라고요...

  • 이준서 2013.03.18 21:40

    참 좋은 방법입니다.
    저도 음악을 좋아 하는 편이에요.

    오케스트라 보다는 비용 문제 때문에 미니 오케스트라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 제목을... 2013.03.18 22:58

    제목을 고쳐야 할 듯요...

    오타야요.

  • 이현애 2013.03.19 11:03

    뭔가 기다리는게 있다는거는 삶에대한 긍정적 영향을준다. 앞으로 오년만 더 기다리면 될까요?

  • 촌철살인 2013.03.19 15:10

    ㅎㅎ 한국이란 사회가 이런 좋은 아이디어도 자기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면

    실행하지 않는 長급들이 문제이죠...너무너무 굿아이디어인데요..ㅎㅎ

    생각만 해도..즐겁군요...

  • 세눈박이욘 2013.03.20 22:41

    교수님의 멋진 아이디어에 갈채를...
    덧붙여 병원 자체로 전액이 부담스러우면 후원자들을 모집해 추진해 보는 방법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천안의 명품인 소고기와 성안배와 연계시켜 추진해보면 또 하나의 명품이 탄생하지 않을까요? ^^^

  • 둘리 2013.03.21 12:08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서민교수님같은 분이 병원장이면 얼마나 좋을까....

  • JIN 2013.03.22 00:33

    예전에 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한 학생이 "치과에서 공포증을 심어주는 것이 치료기계소리인데, 만약 이 소리를 클래식 음악으로 바꾸면 공포심은 얼마나 줄어들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실험을 해보겠다고 라디오플레이어를 들고 다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습기도 하지만 참 좋은 궁금증이라고 생각했는데요...문득 이번 글 읽고 다시 새록새록 생각이 나네요 (음대생 취업 ㅠㅠ 남의 이야기가 아니네요 흑흑)

  • prem 2013.03.28 01:35

    아, 좋은 아이디어네요.
    근데, 병원이 환자 줄어들 일을 하려고 할까요?

  • PHY 2013.03.28 14:36

    한 달에 만 원씩 내는 회원을 천 명만 충청도에서 모을 수는 없겠지요...

  • KHO 2013.08.31 15:42

    예전부터 교수님 책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꿈이 의사인데, 의대에 합격하면 전공과 관련없이 가장 하고싶은 일이 바로 바이올린 연습하기 입니다. 대학을 준비하느라 하고싶었던 것을 못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입학하게 된다면 미래의 환자들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취미생활로 바이올린연주를 할것입니다. 물론, 제 환자들도 저도 행복해지겠지요.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