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화가 한통 왔습니다.

민주당 어쩌고 하는데, 제가 수업에 들어갈 시간이라 마음이 급해서 제대로 듣진 못했습니다.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비례대표 명단에 이름을 넣으면 안되겠냐고 했습니다.

술이 확 깼습니다.

"비례대표요? 전 정치할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단호히 말했죠.

괜찮답니다.

비례대표 30번 이후는 형식상 하는 거라면서, 이름만 잠시 빌리는 거라고 했습니다.

수락해 주지 않으면 전화를 안끊겠다고 하기에,

마음대로 하라고 한 뒤 그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비례대표 32번이 됐다고, 기탁금을 내라고 하네요.

1500만원을 내야 등록이 되고, 5% 이상 득표하면 선거 후 돌려준다고요.

안내겠다고 하려다 생각해보니 슬그머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32번이니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하지만

새누리당 요즘 하는 거 봐서는 민주당이 70%를 득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내와 상의해서 우리은행에 갔고,

국회의원 출마를 빌미로 대출을 받았습니다.

은행 직원도 서류를 보더니 갑자기 저한테 친절하게 대하더군요.

 

 

원래 전 올해 9월부터 하버드 대학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제가 연구하는 게 미라의 기생충 쪽인데,

하버드의 스테판 에드베리 교수가 제 논문을 보고 여러 차례 관심을 표명해 왔거든요.

2년 일정으로 연수를 하고 난 뒤 교수 자리를 내줄 마음도 있다고 했어요.

물론 제가 하버드 교수가 될 확률은 국회의원이 될 확률보다 더 희박하지만,

그래도 그 제의만으로 가슴이 뛰었어요.

검색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에드베리 교수는 징기스칸의 묘에서 기생충알을 찾아 네이처에 싣는 등

미라 기생충학 업계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분이셨거든요.

그런 분으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으니 얼마나 기쁘겠어요?

 

하지만 비례대표 명단을 보고나니

민주당이 마구 선전해서 국회의원이 된다면 어쩌나 싶네요.

꿈에도 그리던 하버드행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제가 정치를 해서 잘 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어요.

하지만 아내는 "나도 의원 사모님이 되보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고

제 든든한 후원자인 어머니는 벌써부터 제가 국회의원이 됐다고

200여군데다 자랑을 했다네요.

겨우 32번인데 말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못 이루며 이 글을 쓰고 있는데요,

전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I am willing to meet you, Dr. Seo"라고 친히 메일을 보내 주셨던 에드베리 교수를 생각하면

제가 이렇게 배신할 생각을 한다는 게 미안해집니다.

내일은 월요일이고, 9일 있으면 모든 게 결판이 나겠지요.

그러고보니 오늘도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네요.

여러분도 4월 1일의 남은 한 시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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