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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권하는 사회

우리나라는 사기공화국이다

 

내 이름으로 등록한 첫 번째 차는 중고 마티즈였다.
연식도 얼마 안돼고 주행거리도 짧아 이전비 포함 400만원 정도 들여 샀는데,
알고보니 큰 사고를 겪어서 한쪽 문짝이 열리지 않았다.
그것 이외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 조금 타다가 처분해 버렸고,
지금은 어머니가 타던 EF소나타 (2000년식)를 50만원에 사서 잘 쓰고 있다.

어머니 차지만 나도 결혼 전에 제법 이용하던 거라 익숙한 것도 있지만,
사고나 고장 같은 것도 없었다는 걸 잘 안다는 게 차를 신뢰할 수 있는 이유다.

 

지난 주말, 인터넷에서 중고차 사기에 대한 글을 보고 호기심이 동해
관련 영상을 몇 개 봤다.
내가 모르는 복마전같은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허위매물을 이용한 중고차 사기는 대략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1) 중고차 사이트에 좋은 차가 말도 안되는 가격에 올라온다.
예를 들어 2014년식, 2만km밖에 안뛴 레이 차가 420만원에 올라와 있다.
이 정도면 700만원 정도가 적정 가격이니 웬떡이냐 싶다.
구매희망자는 차 밑에 나온 전화번호로 딜러에게 전화를 건다.
구매자: 정말 420만원이면 차 살 수 있어요?
딜러: 그럼요. 그 돈이 이전비 조금만 보태면 차 가져갈 수 있어요.
구매자: 왜 이렇게 싸요? 사고난 건가요?
딜러: 아, 사고는 없고요, 저희가 경매로 차를 왕창 가져오거든요. 그래서 싸요.
구매자: 그럼 당장 갈테니, 차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아주세요.

 

 

2) 차를 보러 간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면 그 차가 아니다.
레이는 레이인데, 번호판은 물론이고 색깔, km 수가 다르다!
딜러는 이렇게 변명한다.
“우리가 인수해서 차 도장을 다시했고요, 번호판도 다시 받은 거예요. 인터넷에서 보신 그 차 맞아요.”
2만킬로가 아니라 10만킬로인 건 어떻게 된 거냐 물어보면,
원래 킬로수도 좀 다를 수 있다고, 테스트 하고 그러다보면 늘어나기 마련이란다.

 

3) 그래도 그 차를 사겠다고 한다
10만킬로라고 해도 420만원은 매력적인 가격이니, 그 차를 사겠다고 한다.
하지만 딜러는 그 차가 하자가 있는 차라고 한다.
“이게 지난 여름 침수된 차예요.”

“급발진 사고난 거예요.” “도로에서 몇 번이나 섰어요.”
“ECU 아시죠? 그게 사람으로 따지면 뇌 같은 건데, 그게 완전히 망가졌어요.”
딜러는 왜 그 차를 못사게 할까.
사실 그 차는 구매자를 꼬이기 위한 미끼 매물일뿐,

자기 차가 아닌 경우가 많다. 
딜러의 말에 구매자가 알았다고, 안사겠다고 하면
딜러는 그제야 자신이 팔고 싶은 차를 권해준다.
10년도 더 된, 사고도 있고 시중가격이 200만원도 안될 차를 말이다.
이런 차를 팔아서 딜러는 200만원 정도의 차액을 남긴다.

 

4) 그래도 차를 사겠다고 하면?
침수됐다고 우기는데도 불구하고 구매자가 계속 원래 본 레이를 사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딜러는 화를 낸다.
이 차 사고났는데 왜 타려고 하느냐, 자기는 책임지지 못한다며 눈을 부라리는 딜러.
그래도 사겠다고 우기면 최후의 카드를 꺼낸다.
“이 차가 사실 할부가 남아 있어요.”
할부라는 말에 구매자는 놀라자빠진다.
420만원에 가져갈 수 있다더니 웬 할부?
하지만 “할부가 600만원 정도 남았어요.”라며 태연히 말하는 딜러,
700만원 정도가 적정선인 레이는 졸지에 1천만원짜리 차가 돼버리고,
할 수 없이 구매자는 차 사는 걸 포기하든지, 아니면 딜러가 권하는 후진 차를 사야 한다.

이상이 김슬기 팀장의 허위매물 탐방기에 나와있는 내용인데,
https://www.youtube.com/watch?v=ZwW_hSMLduE

 

이것 말고도 사기의 유형은 다양하다.
정직한 딜러들로서는 이런 사기범들로 인해 자신들까지 사기딜러로 오인받는 게 싫고,
그래서 허위매물 탐방기를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다.
자신도 사실은 딜러라는 사실을 밝히면 허위매물 딜러들은 오히려 화를 낸다.
“상도덕을 지켜야지 지금 뭐하는 겁니까?”라고 화를 내는 딜러들을 보면서
적반하장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내가 본 동영상의 하이라이트는 이태호 팀장의 탐방기인데,
여기선 아예 이태호 팀장이 타고 다니는 차가 매물로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자신의 차가 사기딜러의 허위매물로 올라온 걸 보면 얼마나 어이없을까.
원래 가격은 4천만원이지만, 올라온 가격은 1700만원,
그래서 이팀장은 그 딜러에게 인터넷에 올라온 차를 사겠다고 한다.
이팀장: 지금 가면 차 볼 수 있나요?

딜러: 그럼요, 볼 수 있습니다.

허위매물로 나온 그 차를 몰고 딜러에게 간 이팀장,
차를 구석에 세운 뒤 이팀장은 딜러에게 차를 보여달라고 한다.
딜러는 지금 그 차가 없다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척을 하는데, 중간에 이런 말을 한다.
“아, 광택 내러 광택집 갔다고요.”
그러면서 딜러는 자기가 팔려던 차를 권하는데,
해당 영상을 보면 정말 웃지못할 장면들이 속출한다.

장담컨대 무한도전보다 더 재미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joYd3RMYEE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면.
이팀장은자신이 인터넷에서 봤던 차가 주차장 한쪽에 있더라는 이팀장의 말에
딜러는 그럴 리가 없다고 우기는데,
그 차가 정말로 있는 걸 확인하곤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 직원이 광택집서 빼왔구나!”

인천과 부평을 중심으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는데,
수많은 피해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위매물 사기가 성행하는 이유는 다음에서 알 수 있다.
정직한 딜러의 도움으로 사기딜러를 검거한 경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잡아넣어 봤자 벌금 10-20만원 정도 내면 다시 풀려나요.”
그렇다. 문제는 지나치게 낮은 형량이다.
한번 사기를 쳐서 얻는 이익은 100만원 이상인데
걸려봤자 벌금 10만원이 고작이라면, 사기를 칠 이유가 충분하다.


김웅이라는 검사가 쓴 <검사내전>을 보면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사기공화국이다...사기는 남는 장사다. 밑천 없이 시작할 수 있고
세금도 안낸다. 사기를 쳐도 잘 잡히지 않고, 설사 잡혀도 대부분 쉽게 풀려난다.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긴다.

그러다보니 한해에 24만건의 사기 사건이 발생한다.

2분마다 1건씩 사기가 벌어지는 셈이다. 사기로 인한 피해액도 매년 3조원이 넘는다.(18쪽)]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피해자를 탓하는 건 아니지만, 사기를 당하는 데는
피해자의 내면에 잠재된 욕심이 큰 역할을 하니까 말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정보가 왜 하필 자신에게 제공되겠는가?
중고차 사기도 마찬가지다.
값싸고 좋은 차는 없다는 사실만 안다면
허위매물에 속아 후진 차를 사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좀 더 나가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사기꾼에게 속아 1번을 찍지 않았다면

지금 다스가 누구 거냐고 묻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돈이 오갈 땐 꼭 한번 더 생각하자.

사기로부터 자유로운 2018년이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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