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과민이다

 

 

 

 

 

난생 처음 한 위내시경에서 문제가 생겼다.

다행히 의학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내시경을 이용한 수술로 위점막을 절제하는 걸로 치료가 끝났지만,

난생 처음 중환자실에도 가보는 등 나름의 고생을 했다.

퇴원을 하던 날, 의사는 "앞으로 두달간은 절대로 술을 마시면 안된다"고 말했지만,

아내는 한 술 더 떠서 앞으로 평생 술마실 생각은 하지도 마라며 금주 약속을 받아냈다.

안그래도 병원 침대에 누워 '이젠 술과는 이별이구나'며 마음의 준비를 했고,

남들이 삼십년 마실 술을 미리 마셨으니 안마셔도 아쉬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틀린 게 인간인지라

의사가 말한 두 달이 지나자 슬슬 몸이 근질근질했다.

평소 물처럼 마시던 소주와 도수가 낮아 술 취급도 안하던 맥주가 너무도 먹고 싶었다.

'의사가 마셔도 된다는데 조금만 마시면 안될까?'라며 아내에게 애원해 봤지만,

아내는 단호했다.

"한 방울만 마시면 가만 있지 않겠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마시기 심심해하는 선배를 위해 소주 세 잔을 마셨다.

음주측정기까지 구비한 아내한테 당연히 걸렸고,

"니가 인간이냐"는 내용의 일장 연설을 들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내는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내 어머니한테 찾아가

"민이씨가 또 술을 마셔요 흑흑" 이러면서 어머니 손을 붙잡고 읍소를 했다.

그 뒤부터 난 건실하게 산다.

오늘 술자리에 갈 때도 알콜이 들어있지 않은 '비알콜 맥주'를 가져갔을 정도.

가끔씩 아내가 너무 과민한 게 아닌가 원망스럽지만,

안다. 그게 다 아내가 날 사랑해서 그러는 거란 걸.

 

 

 

미국산 소가 광우병에 걸렸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이 입증될 때까지 무기한 수입중단 조치를 내리기로 했습니다."

농림수산부 장관은 이런 성명을 발표하고 학자들과 검역관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조사단을 미국에 파견한다.

미국산 쇠고기에 길들여진 시민들은 "그깟 일에 수입중단이 웬말이냐"고 시위를 하고,

값싼 미국 쇠고기를 먹게 해달라는 서명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몰래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다 걸린 사람이 실형을 살고,

그 쇠고기를 먹은 사람도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렇게 2년이 지났을 무렵 조사단이 결과를 발표한다.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합니다."

곳곳에서 축제가 벌어지고, 청와대 앞마당에선 미국산 쇠고기 파티가 열린다.

이게 제대로 된 정부가 했어야 할 시나리오다.

 

 

 

안타깝게도 현 정부는 별로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당장 미국산 쇠고기를 통해 광우병이 수입될 확률은 희박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이성과 달라 비합리적으로 작동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2008년에 광우병 때문에 그 난리가 났으니,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해 줘야 마땅하겠지만,

이 정부는 어떻게 된 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

서규용 농림수산부 장관이 26일 기자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이런 말을 하려면 최소한 며칠은 조사하는 척이라도 해보고 난 뒤여야 할 터였지만,

불과 몇 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파견된 건 그 이후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우려를 괴담으로 치부하기 바쁘다.

하는 말마다 젖소 타령이고, 2008년의 광고는 사실도 아닌 걸 짜깁기했다고 한다.

 

 

내가 퇴원하는 날, 아내가 소주에 삼겹살을 잔뜩 구워놓고 퇴원 기념 축하파티를 열었다고 생각해보자.

"의사가 두 달 동안 술 먹지 말랬는데?"라는 내 항변은

"그거야 혹시나 해서 하는 소리지, 마셔! 마시자고!"라는 아내의 외침에 묻혀 버리고

난 아내의 "웟샷!" 소리에 맞춰 불안에 떨며 잔을 부딪힌다.

그럼 난 소주를 입안으로 흘려 넣으며 이런 생각을 할 거다.

"아내는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내가 입원한 동안 다른 남자가 생긴 게 분명해."

미국서 들어온 쇠고기를 앞에 놓고 우리 국민들도 이런 생각을 할 거다.

"대통령은 역시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 지난번 미국 갔을 때 미국 쇠고기 업자와 사랑에 빠진 게 분명해."

자기 나라 대통령으로부터 버림받은 불쌍한 국민들이여,

이게 다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우리의 업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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