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을 먹자

“저 소는 성찬이에겐 자식이야.”

영화 <식객 1>에서 가장 이해가 안됐던 대목은 주인공 성찬이 자식처럼 아낀다던 소를 죽이는 장면이었다. 최고 요리사를 뽑는 대회에 나간 성찬은 질 좋은 고기를 제공할 소를 찾으라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결국 자신이 키우던 소를 잡는다. 요리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주위의 강권으로 출전한 걸 보면 성찬에게 최고의 요리사라는 타이틀이나 우승 상품인 ‘대령숙수의 칼’이 무슨 소용인가 싶은데, 그래서 난 성찬이 애써 슬픈 표정을 지으며 소를 잡는 것에 공감하지 못했다.

“제가 아들 등록금을 대려고 이번에 소를 잡았습니다.”

내게 아들을 잘 부탁한다며 찾아오신 학부형의 말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처럼 농촌에 사는 분들에게 소는 자식이라기보다 재산목록 1호다. 그분들은 여물을 맛있게 먹는 소를 보면서 자신들의 미래를 꿈꾼다. ‘이 소를 팔아서 우리 딸 시집 갈 때 밑천으로 써야지.’ ‘새 집으로 이사갈 때 보태야지.’
하지만 지금 그분들의 꿈은 구제역으로 산산조각 나고 있다. 구제역은 바이러스 질환으로, 소나 돼지 등 발굽이 갈라진 동물에게 주로 감염된다. 걸리면 열이 나고 입과 발에 수포가 생기는데, 침을 많이 흘리는 게 특징이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접촉으로 전파되며, 옷이나 자동차에 묻어 멀리까지 전파될 수 있다. 워낙 전파력이 강하고 증상이 없는 경우도 있어 구제역이 발생하면 소나 돼지를 무조건 땅에 묻는 수밖에 없다. 이게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멀쩡히 살아있는 자식 같은 소들을 땅에 파묻으라니!”
“2년 넘도록 잘 먹이고 아프지 않게 키우느라 고생했는데 벼락 맞은 기분이다.”

성찬이 소를 죽일 때와는 달리 이분들의 눈에선 피눈물이 난다. 사람이 구제역에 걸리는 일은 드물다. 사람 감염이 몇 차례 보고된 적은 있지만, 대부분 실험실에서 감염된 거였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위산에 약해 감염된 고기를 날로 먹더라도 걸릴 확률은 낮다. 게다가 70도 정도로만 온도를 높이면 바이러스는 금방 죽어버린다. 영국에서 1966년 마지막으로 구제역에 걸린 사람이 발생했고, 우리나라는 아예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구제역이 발생하면 고기 먹는 걸 꺼리고, 안 그래도 어려운 축산농가는 사람들의 기피로 완전히 몰락한다.
비단 구제역만이 아니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유행할 때도 사람들은 닭을 먹지 않았다. 닭을 날것으로 먹지 않고 조리해서 먹으면, AI 역시 바이러스인지라 고온에서 금방 죽는데 말이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좀 그렇죠.” 당시 닭을 먹으러 가자는 내 제의를 후배는 이렇게 거절했다. AI로 죽은 사람은 딱 한명, 장사가 하도 안돼 자살을 한 닭집 주인뿐이었다.

우리 사회는 연대가 부족한 곳이다. 예컨대 파업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건만, 우리 사회는 너무도 손쉽게 그들을 비난한다. 연대의 부족은 먹거리 문화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소위 ‘쓰레기만두 파동’ 때 사람들은 만두를 먹지 않았듯이,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음식을 소비하지 않는 것으로 대처하곤 한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일까? 구제역이 돌 때 우리가 삼겹살을 안 먹는 건 기분 문제일 뿐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지만, 고기를 팔아서 생계를 이어야 하는 사람들에겐 그런 행위가 생존권에 대한 위협이다. 먹거리 분야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 우리가 앞장서서 그 음식을 먹어주면 안되는 걸까? 지금은 삼겹살을 구울 때다. 스폰서 있는 검사님들은 쇠고기를 드셔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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