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벌써 20일이 지난 얘기지만, 올 시즌 프로야구는 삼성의 우승으로 끝났다. 시즌 전부터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삼성의 우승을 예상했다. 이런 일에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리기 마련이지만, 올 시즌만큼은 다른 의견을 제시한 전문가가 없을 정도였다. 삼성이 2011년 우승팀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삼성은 어느 팀보다 두꺼운 선수층을 보유하고 있었고, 홈런타자 이승엽이 가세했으며, ‘끝판대장’이란 호칭에 빛나는 철벽 마무리 오승환이 있었다.
그렇다고 삼성의 우승이 마냥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시즌 초반 주전선수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극도의 부진을 보였다. 작년 30개로 홈런왕에 올랐던 최형우가 올 시즌 친 홈런은 고작 14개였고, 10승을 올리며 작년 삼성의 우승에 기여한 차우찬은 방어율 6점대로 6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시즌 개막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삼성의 순위는 8개 팀 중 7위였다. 이 공백을 메워 준 게 바로 두꺼운 선수층이었다. 한 선수가 부진하면 갑자기 나타난 다른 선수가 빛나는 활약을 보여줬다. 무더위가 시작된 7월부터 1위를 지킨 삼성은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2위와의 차이를 벌렸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SK를 여유있게 물리치고 우승했을 때 사람들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12월19일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점쳤다. 이런 일에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리기 마련이지만, 이번 대선만큼은 다른 의견을 제시한 전문가가 드물 정도였다. 그렇다고 박근혜의 대선 행보가 마냥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작년 9월 안철수 후보가 서울시장 후보를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한 뒤 지지율이 급상승해 박근혜를 처음으로 추월했고, 올해 7월에는 다자대결에서도 1위로 나서는 기염을 토한다. 민주당 경선이 끝난 9월에는 문재인 후보가 양자대결에서 처음으로 박근혜에게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이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추석을 지나면서 박근혜의 지지율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 3자대결에서 40%를 돌파하며 20%대에 그친 두 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린다. 안철수가 사퇴한 뒤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박근혜는 5%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문재인 후보를 앞서고 있다. 누구를 지지하느냐가 아니라 어느 후보가 승리할 것인지 물었을 때, 단일후보인 문재인이 승리할 것이란 응답은 30%인 데 반해 어려울 것이란 응답은 52.4%다.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걸 감안하면, 대선 당일 웃는 이는 박근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경향신문DB)
신기한 것은 왜 박근혜가 1위를 달리는지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박근혜의 이력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분석해 봤을 때 어느 하나 뚜렷이 내세울 만한 게 없으니 말이다. 자신이 한 건 아니라 해도 박근혜는 유신독재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최근 몇 년간 박근혜가 잘했다고 할 만한 업적이 있느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네이버를 보면 ‘박근혜의 업적이 뭐가 있나요?’라는 질문이 여럿 있는데, 답변을 보면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자서전을 낸 게 유일한 업적인 듯하다. 그렇다고 미래가 기대되는 것도 아니다. 평생의 소신일 것 같던 ‘줄푸세’를 갑자기 포기하고, 경제민주화를 외치다 하루아침에 폐기하는 걸 보면 국정에 대한 철학이 있는 것 같지도 않으니까. 그를 뒷받침할 캠프의 선수층이 두꺼운 것도 아니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비판하며 ‘홍어X’이란 표현을 쓴 김태호 의원이 선대위 공동의장이고, “(2008년 촛불집회를) 대통령이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 한다”고 한 김무성 전 의원이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인 것에서 보듯, 박 후보의 캠프는 하나같이 막말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로 짜여 있다.
그럼에도 박근혜는 현재 흔들림 없는 1위다. 전력이 센 팀이 우승할 확률이 높은 야구와 달리 선거는 능력 있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이길 확률이 높은 건 아니니까. 민주주의가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엔 십분 동의하지만, 가끔은 민주주의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