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라.”
성 암브로시오의 명언이라고 전해져 온 속담이다.
이 속담을 우리나라에 맞게 변형시키면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는 새누리 법을 따라라.”
왜 그래야 하느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요 몇 년 새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이게 말이 되느냐”고 따지기 시작하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고, 결국 공황상태에 빠진다.
그러느니 꼬치꼬치 따지지 말고 잘 적응해서 사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터,
이 글은 그러니까 새누리 공화국 치하에서 성공할 수 있는 처세술을 요약한 것이다.
상황1. 학생이 시험 시간에 커닝페이퍼를 보다가 감독 선생에게 걸렸다. 이때 학생이 해야 할 올바른 행동은?
답: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을 받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짓,
오히려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큰소리로 이렇게 말하자.
“감독선생님, 학교 옆 주민한테 우리 학교 운동장 100 헥타아르를 텃밭으로 써도 된다고 했다면서요? 학생들이 써야 할 운동장을 대체 무슨 권한으로 그러셨는지 해명해 주십시오.”
감독선생은 이게 무슨 황당한 얘기인가 싶어서 멍 때리고 있을 텐데,
그때 미리 매수해 둔 친구더러 이렇게 말하라고 한다.
“맞아요. 제가 그렇게 얘기하는 거 들었어요. 학교 학생으로서 너무 굴욕적이고 창피했어요.”
그때쯤 되면 학생들 전체가 감독선생을 비난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며, 커닝에 대한 건 싹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나중에 감독선생이 커닝 얘기를 하면 이렇게 말하라.
“제 문제는 제가 잘 압니다. 저 스스로 개혁하겠습니다.”
상황2. 학생이 비디오방에 갔다가 사진이 찍혔다. 이때 학생이 해야 할 올바른 행동은?
답: 사진이 찍혔으니 빼도박도 못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일단 그 사진의 인물은 자신이 아니라고 우기자.
사진에 나오는 옷은 갖고 있지도 않으며, 좀 닮긴 했지만 세상엔 닮은 사람이 많은 법이라고 하자.
게다가 비디오방이 거기 있는지도 몰랐으며,
만일 그게 자신이면 삭발을 하겠다고 세게 나가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그 사진을 의뢰해 진위를 밝히자고 우기는 것도 좋다 (학교 측에선 아마 귀찮아서 의뢰를 안할 거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학교에 다른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비디오방 갔던 일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다.
새누리공화국에서 우기기만큼 좋은 전술은 없다.
상황3. 구술시험을 보는데 공부를 하나도 안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 아는 게 없다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안된다.
일단 표정은 최대한 밝게 하고, 대답은 최대한 얼버무린다.
그리고 선생의 질문에 장난치듯 답변을 해라.
선생: 삼국을 통일한 장군은?
학생: 장군까지는 잘...
선생: 삼국시대 때는 우리나라에 몇 나라가 있었나요?
학생: 나라 숫자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하하.
선생: 국사는 전혀 모르나요?
학생: 전혀 모르는 건 아니고요.
선생: 공부를 안한 것 같은데, 교과서는 읽어봤나요?
학생: 다는 못읽어보고, 어떤 거는 읽어봤고, 못읽어본 것도 있습니다.
혹자는 “이러면 빵점 아니냐”라고 걱정하겠지만, 새누리 공화국에선 이런 식의 답변이 점수를 잘받는 지름길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이런 식으로 그 어려운 장관 청문회를 통과했다.
상황 4. 담임선생이 반장을 뽑았는데, 그 반장이란 자가 원래 평판이 좋지 않은 학생이었다. 결국 그 반장은 하라는 일은 안하고 여학생을 성희롱하다 걸렸다. 이때 사과는 누가, 누구한테 해야 하나?
답: 얼핏 생각하기엔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을 반장으로 뽑은 담임선생이
그 여학생을 포함한 반 아이들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지만,
새누리공화국에선 그러면 안된다.
답은 부반장이 한다,이다. 누구한테? 담임선생님한테. 이렇게 말이다.
“부반장으로서 저랑 같이 학급일을 보는 반장이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럽고 죄송스럽다. 담임 선생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새누리공화국에서 사과는 당사자가 피해자에게 하는 게 아니라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하는 거다.
모 우유회사 직원이 나이든 대리점 사장에게 심한 욕을 했을 때
회사가 대리점 사장 대신 “국민께 죄송합니다”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
상황 5. 회사 사장이 여직원에게 정신을 못차린다고 야단을 쳤다. 미안한 생각이 들어 격려를 해주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될까?
답: 용기를 주는 내용으로 편지를 쓰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건 격려가 되지 못한다.
대한새누리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여성의 허리에는 엔도르핀 분비샘이 잔뜩 들어 있어서,
허리를 툭 치는 것만으로 여성의 기분이 좋아진단다.
그러니, 그 여직원을 은밀한 곳으로 불러 허리를 쳐주시라.
위 문장을 영어로 하면 다음과 같다.
“So, call the lady into a confidential place and grab her buttock.”
상황 6. 당신은 능력이 없는데도 아버지 백으로 회사 사장이 됐다. 마침 회사에 큰 문제가 있어서 사람들은 당신의 입장표명을 요구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 솔직히 모른다고 한다거나 공부를 좀 해서 입장을 밝힌다, 같은 답변이 떠오르겠지만
새누리공화국에선 그런 건 하수 중의 하수,
아는 게 없을 땐 아무 말도 안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말을 안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진짜 몰라서 말을 안하는지 아니면 같잖아서 말을 안하는지 사람들이 헷갈리니까.
그러다 “회사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서 유감이다”라고 한마디 해준다면 금상첨화다.
당신의 인기는 더 올라갈 것이니라.
이 일곱가지 처세술을 터득했다면 당신은 이제부터 새누리공화국의 국민이 된 거다.
남은 4년 7개월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됐으니, 당신은 참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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