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7017에 관한 기사가 뜰 때마다 네티즌들은 입을 모아 박원순을 욕한다.
"매연 가득한 그곳에 왜 가느냐", "땡볕 피할 곳도 없어 사람들 걷다 쓰러진다"는 댓글을 보고 있노라면,
서울로가 세금낭비고, 엄청난 흉물이 하나 탄생한 것 같다.
하지만 다녀온 분들이 블로그에 남긴 후기를 보면 정반대의 얘기가 펼쳐진다.
가볼만한 곳이고 또 와야겠다, 밤에 오자, 이런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개통 한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사람이 바글바글하단다.
서울로가 정말 흉물이라면 지금쯤은 소문이 나서 아무도 걷지 않아야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런 의심을 할만하다.
서울로를 욕하는 분들의 대부분은 실제 가본 적이 없는 분들이 아니냐는 것이다.
즉 서울로를 만든 이가 박원순이니,
서울로의 실체에 무관하게 욕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서울로는 원래 있던 다리를 보행로로 바꾼 거라, 예산낭비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롭다 (그래도 580억이 들긴 했다).
게다가 서울로의 최대 장점은 신호등과 지하도를 거치지 않고 서울역 인근의 목적지에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역을 뻔질나게 다녀본 경험으로 말씀드리건대,
서울역에서 인근 건물로 가려면 좀 불편하다.
가까운 거리라도 신호등 4-5개를 건너거나 아니면 음침한 지하도를 가야 하는데
서울로를 이용하면 훨씬 간편하다는 거다.
서울역 일대를 오갈 수 있는 17개의 연결망을 갖춘 초대형 육교,
이것만으로도 서울로의 기능은 충분하다고 본다.
어차피 고가도로가 낡아 철거해야 했으니,
그걸 육교로 리모델링한 게 뭐그리 욕먹을 일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공원'으로 보기엔 부족할지언정
족욕탕과 카페, 각종 식물 등 볼거리까지 있다면 600억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욕하는 분들은 앞으로도 관련기사만 뜨면 거품을 물 테지만,
조형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만든 이를 떠올리며 욕을 하는 그분들이 안스럽기 짝이없다.
이건 비단 박원순의 반대쪽 사람들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을 만들었을 때,
할머니를 모시고 가서 함께 산책을 한 적이 있다.
할머니는 흐르는 물을 보면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는데,
당시 내가 다니는 사이트에다 '청계천 참 좋더라'라고 썼더니, 난리가 났다.
청계천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아느냐부터 (인근 상인들의 생계를 박탈하고 만들어졌다고)
그 물을 흐르게 하는데 얼마나 세금이 낭비되는지 (하루 2천만원이란다)
그게 시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MB 자신의 대권욕심 때문에 만든 거라는 얘기까지 (결국 MB는 대통령이 됐다),
어찌나 욕을 먹었는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런 청계천을 보며 좋아하는 내가 순진하고 어리석은 거라는 말도 들었다.
볼 게 그리 많지 않은 서울에서 물이 흐르는 산책로를 보며 좋아한 것이 그리 큰 잘못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많은 시민들이 즐거워한다면 거기에 돈을 쓰는 게 나쁜 일은 아니며,
그런 업적을 바탕으로 대권에 도전한다면 그걸 천하없는 나쁜 짓이라고 욕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로부터 십여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서울로 2017을 열심히 깐다.
그들의 논리는 십여년 전 청계천을 까는 논리와 판박이처럼 똑같다.
그런데 댓글들 중 신기한 대목이 있다.
매연 마시러 뭐하러 거길 가느냐며 차라리 청계천을 가란다.
이 글에 공감이 많은 걸 보면
개통 초창기 사람들이 그렇게 욕하던 청계천은 이제 서울의 흉물에서 명물로 입지가 바뀐 모양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10년쯤 후, 사람들이 또 다른 욕할 거리를 찾아나설 그때쯤엔
서울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 것 같다.
끝으로 서울로를 욕하는 분들에게 한 마디 드린다.
"죄는 미워도 건축물은 미워하지 말랍니다. 증오의 안경을 벗고 세상을 바라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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