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개념 군주의 시대


군주는 오직 덕으로써 백성을 너그럽게 대해야 본래의 착한 본성을 일깨우고...”

<논어>의 한 대목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안봐도 뻔하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은 왜 너그러움과 담을 쌓고 땅만 파고 있는가.” 말인즉슨 지당하지만, 난 논어를 빗대어 우리 대통령을 비판하는 행태에 짜증이 난다. 시대가 다른데 언제까지 공자 시대의 낡은 잣대를 고집해야 하는가?
그 시절엔 TV도 없었고 지하벙커도, 심지어 불도저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공자의 시대는 갔다. 오죽하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까지 나왔겠는가? 21세기의 군주는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 대통령의 예를 들어 얘기해 본다.
 


첫째, ‘공은 자신이, 책임은 아랫사람이’ .

군주는 죽을 때까지 왕 노릇을 하는 반면, 대통령은 5년 단임이다. 그러니 치적이 많은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면 공은 자신에게, 책임은 아랫사람에게 돌려야 한다. 우리 대통령은 그 점에서 탁월하다. 예컨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단호히 대응하되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하라”고 했다.
하지만 보수층을 중심으로 너무 저자세라는 비판이 일자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빠졌고, 결국 잘못 들었다고 사과를 한 건 홍보수석이었다. 반면 카빈소총 등 최첨단장비로 무장한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했을 땐 9시 뉴스에 나와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내가 지시했다”고 해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 이런 자세야말로 신개념 군주에 부합한다.


둘째, 약속은 과감히 깨자

논어를 보면 “도리에 어긋나는 약속은 해서 안된다.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하면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신개념 군주는 어떤 약속도 할 수 있고, 이미 했던 약속도 얼마든지 깰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세종시와 과학벨트, 그리고 신공항 공약은 현 대통령에게 많은 표를 몰아준 원동력이었다. 이제 대통령이 된 마당에 경제성도 없는 그런 약속에 매달려 국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는 법, 그 공약들은 하나씩 하나씩 물거품이 됐다.
대통령은
“표를 얻기 위해 지역공약을 한 것은 내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라고 했지만, 그럴 리는 없다. 그건 신개념 군주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니 말이다.



셋째,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과거엔 산속에 들어가 글만 읽던 이들이 정승으로 발탁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하지만 지금같은 하이테크 시대엔 다방면에 경험이 풍부한 이가 군주가 돼야 한다. “내가 뭐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것처럼, 현 대통령의 경험은 풍부하다 못해 차고 넘친다.
노점상을 해본 경험이야 많이들 있겠지만, 천안함 사건 때 했던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란 말은 대통령이란 자리가 아무나 하는 건 아니구나,라는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그 외에도 대통령은 “내가 수재민이어서 아는데” “내가 치킨 2주에 한번씩 먹어서 아는데” 등등의 발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넷째, 외유내강 대신 내유외강

‘공야장’ 11장이나 논어 선진편 12장을 보면 공자는 외유내강을 높이 평가한 듯하다. 흔히들 외유내강이 좋은 줄 알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무섭게 생기고 행동도 거칠어야 남들이 깔보지 않는다.
현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탁월하기 이를 데 없다. 겉으로는 북한한테 “사과 안하면 말도 안한다”고 큰소리를 빵빵 치지만, 실상은 아랫사람들을 시켜 “사과 비슷한 거라도 해주면 안될까?”라고 빌게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내유외강’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다섯째, 치수사업을 벌이자

옛날 군주의 덕목이라 해서 무조건 버려야 할 건 아니며, 물을 다스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중요하다. 고대 중국의 성군이라 일컫는 우 임금은 치수사업을 돌보느라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가슴 찡한 얘기가 전해지는데, 그 점에서는 현 대통령도 못지않다. 전국의 강을 하나로 연결하는 대운하를 만들려다 국민들의 반대가 심하자 ‘4대강 살리기’로 이름을 바꿔 일을 추진하는 그 집념이 우 임금에 뒤진다고 할 수 있을까?
올해 말이면 4대강 공사가 끝난다고 하니, 내년부터는 홍수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물을 잘 다스리는 군주는 예나 지금이나 성군이다.


우리는 이런 신개념 군주를 대통령으로 모시고 있다. 공자가 본다면 부러워할만도 한데, 정작 우리 안에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적잖게 나오고 있는 현상은 괴이하기 짝이 없다. 남의 떡이 커보이기 때문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적당히 하자. 신개념 군주 삐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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