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PD수첩」 사건 선고공판에서 판결 내용 중 일부가 의료계의 판단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지난달 18일 발표된 대한의사협회의 성명은 정말이지 뜬금없었다. 판사들이 언론사를 상대로 내린 판결에 이의를 제기한 것도 그렇지만, 광우병 파동이 잦아들고 한참이 지난 지금에야 이런 성명을 낸다는 게 더 이상했다. 광우병 파동이 전국을 강타한 건 2008년 4월29일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직후였다. 협상을 잘못한 현 정부를 질타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고, 농림수산식품부는 「PD수첩」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1년이 넘도록 길고 지루한 공방이 오가는 동안 의사협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광우병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의사들이 침묵한 대신 광우병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인 건 해당 프로그램의 번역을 맡았던 정지민씨와 언론들이었다. 그랬던 의협이「PD수첩」이 무죄판결을 받자 대뜸 성명을 발표한다니, 어이없지 않은가.

의협 주장대로 「PD수첩」 보도에는 과장된 부분이 있었다. 방송에서 광우병이 의심 간다고 했던 아레사 빈슨의 사인은 다른 병으로 밝혀졌고, 한국인이 광우병에 더 취약하다는 뉘앙스를 풍긴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며 연구비를 따내듯, 언론사 역시 공익을 실현하고픈 마음에서 어느 정도 과장을 하게 마련이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경제위기가 온다고 떠들었던 조선일보의 보도 역시 경제를 살려보자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잖은가?
재판부가 「PD수첩」에 무죄를 선고한 것은 언론의 그런 속성을 인정한 것이지 「PD수첩」의 주장이 100% 맞아서는 아니었다. “과학적 진실이 왜곡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의협의 비장한 성명서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고 보도한다. 고교생들까지 시위를 한다. 의사협회가 성명서를 발표한다. “미국산 쇠고기 먹어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희박하다.” 시민들이 하나 둘 집으로 간다. 누군가가 그들을 제지한다. “왜 벌써 가? 몇 달은 더 해도 되는데.” 그들 중 한 명이 대답한다. “비켜! 의사협회가 미국산 쇠고기 먹어도 안전하다고 했어.”

제대로 된 시나리오는 이래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일이 다 끝난 후에 뒷북을 울리고, 조·중·동 같이 우수한 인재들을 빼고는 의협의 성명에 별반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예전만 해도 의협은 전문가 단체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의협은 변했다. 의약분업 이후 너무 정치적이 돼버렸다. 대선 때 특정 후보를 지지하라고 공문을 보내고, 이전 정권을 ‘좌파’라고 공격하는 것에만 에너지를 썼다. 심지어 의협 회장이 특정 정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쇠고기 시식회 때 의협 관계자가 참석하기까지 했다니, 국민들이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해가 간다.
난 최근 5년간 의협이 국민 건강에 대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걸 본 적이 없다. 건강에 대해 온갖 잘못된 상식이 난무하고, 그것들이 진실로 둔갑하는 이 나라에서 의협의 변질은 아쉽기만 하다.

“특정 입장을 지지하는 편향적 자료 이외에도 관련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비교·검토함으로써 진실이 왜곡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의협의 말이 그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전염병 권하는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의력 있는 거짓말을  (6) 2010.09.14
그 많던 카카오는 어디로 갔을까  (0) 2010.03.16
신뢰받는 의협이 되려면  (0) 2010.03.02
네이처와 PD수첩  (0) 2010.02.16
기생충 연구와 4대강  (0) 2009.12.22
신종플루가 남긴 것  (4) 2009.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