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것이 문제다

서울시장 선거가 있던 지난 10월, 선관위 홈페이지에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을 해 투표를 방해한 사상 초유의 범죄가 일어났다. 너무 놀란 탓인지 경찰은 수사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꼼수다>에서 계속 문제제기를 한 덕분에 결국 범인이 잡혔는데,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수행비서인 공모씨가 범인이었다.



사람들은 일개 비서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느냐며 배후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 수사결과는 “공씨의 단독범행”이었다. “최구식 의원과 나경원 후보가 친한 사이여서 나 후보를 돕는 일이 최 의원을 돕는 일이라고 판단해 공격을 지시했다”는 게 공씨의 말.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서 걱정이라던데, 27세밖에 안된 젊은이가 저리도 속이 깊다니 가슴이 뭉클하다.

월급이 200만원 남짓한 공씨가 자기 사재를 털어 최소 수천만원이 든다는 사이버테러를 저지른 대목에 이르면 최구식 의원이 부러워질 수밖에. 평소 얼마나 비서한테 잘했으면 이렇게 충성을 바칠 수가 있을까?
그런 면에서 최 의원이 보여준 그간의 행적은 좀 아쉽다. 순전히 자기를 위해서 한 일이건만 시종일관 공씨와의 연관성을 부인하는 데 전력을 다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의도가 아무리 좋다해도 공씨의 행동은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범죄였다. 이 일로 인해 최 의원은 한나라당 홍보본부장에서 물러났으니, 한나라당의 큰 손실이라 할 만하다.

며칠 전에는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이 구속됐다. 영업정지 위기에 몰린 제일저축은행에서 1억5000만원을, 워크아웃 절차를 밟고 있던 SLS그룹으로부터는 7억원을 받은 것. 돈이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돈의 원래 주인이 자기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업체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이자 ‘만사는 형을 통하면 된다’는 ‘만사형통(萬事兄通)’의 주인공 이상득 의원을 보고 그 돈을 준 거였으니 말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1년 12월 12일


중간에서 돈을 가로챈다는 건 보통의 배포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사정이 좀 어렵던 조교 시절, 교수님이 주신 결혼축의금 5만원을 가지고 식장으로 가면서 ‘3만원만 내고 2만원은 나 가지면 안될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그 생각만으로도 현기증이 나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2만원 가지고도 그랬는데 7억여원을 가로채려면 얼마나 떨렸을까? 나 같으면 돈을 착복한 뒤에도 이 의원에게 “잘 받았냐”는 확인전화가 올까봐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거다. 하지만 박모 보좌관은 이런 고난을 다 극복하고 관으로 계속 일하고 있으니, 보통 인물은 아니다.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억측과 비난을 받을 때에는 가슴이 아팠지만 묵묵히 소임을 다하면서 올바른 몸가짐에도 최선을 다해왔다.” 이상득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한 말이다. 아직 76세밖에 안됐고, 4선은 충분히 더 할 수 있을 텐데, 지나치게 담력이 센 보좌관 때문에 아쉽게 됐다. 지역구인 포항은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몇 달 전 일어난 내곡동 사저 파동은 청와대 경호실의 단독범행이었다. 부동산실명제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 실정법을 위반한 것도 문제지만, 이게 대통령도 모르는 상태에서 저질러졌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대통령이 퇴임 후에 살 집인 데다 대통령의 아들이 연루되었고, ‘영부인’의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자행된 일이었음에도 대통령 모르게 할 수 있다니, 청와대 경호실의 능력은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를 능가한다.
이 일로 인해 대통령은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고, 영부인과 함께 야당으로부터 고발을 당하기까지 했으니 이게 무슨 개망신인가?


이상에서 보듯 정부·여당의 문제는 한 가지로 요약된다. 윗사람들은 올바르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반면 아랫것들은 비양심적이라는 것. 그러니 정부·여당의 개혁방향은 현 대통령 수준의 청렴성을 지닌 아랫사람을 뽑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깨끗한 사람이 별로 없을까봐 걱정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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