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수의 커밍아웃



“좌익(좌파)은 진보, 혁신 또는 사회주의적 사상이나 경향을 가진 인물이나 단체를, 우익(우파)는 보수, 자본주의적 사상이나 경향을 뜻한다.”

네이버 사전에 나온 좌.우파의 정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다음 구절이다.

“하지만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절대적인 정치적 이념이나 운동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꼭 사회주의를 지향하지 않더라도 좌파가 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상대성’, 그간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극우노선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좌파라 불러 온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현 정부 들어서는 노선과 무관하게 정부에 대해 비판을 하는 사람을 모두 좌파라고 부르는데, 대운하를 가지고 얘길 한다면 국민의 70% 이상이 좌파인 셈이다.


이게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스웨덴의 인기 작가 스티그 라르손이 쓴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한 구절이다. 조사원의 입에서 블룸크비스트(주인공)이 몸담은 경제 저널 <밀레니엄> 얘기가 나오자 의뢰인은 대번에 이런다.

“좌익지지.”

여기에 대한 조사원의 답변, “좌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하지만 블룸크비스트가 정치 활동을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그렇다면 왜 그에게 좌익이라는 딱지가 붙게 됐을까요? 그건 아마도 경제 담당 기자로서 재계의 부패나 수상쩍은 사건들을 많이 파헤쳤기 때문일 것입니다.”(1권 77쪽)

이 구절을 읽고 반가웠다. 재벌가의 편법상속을 비판하면 좌파가 되는 현실이 개탄스러웠는데, 아무 곳에나 좌파의 딱지를 붙이는 게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라는 걸 확인해서다. 그것도 스웨덴같이 1인당 GDP가 높은 나라도 그러고 있다니, 괜스레 목에 힘을 주게 된다.


기생충 박멸을 주장해도 좌파로 몰릴 수가 있다. 매년 100만-3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말라리아는 세계보건기구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박멸하고자 하는 기생충 질환인데,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정준호 저)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세계보건기구의 전신인 국제연맹보건기구 총장은 살충제나 치료제에 의존하는 접근법보다는 사회 경제적 발전을 통한 말라리아 박멸을 강력히 주장하다가 사회주의적 급진파로 몰려 사임하기도 했다.”(162쪽) 왜 그랬을까? 말라리아는 모기가 옮기는데,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은 모기의 주요 서식처인 습지개발을 통해 말라리아를 박멸했다. 그러니 1940년대 미국의 테네시 개발처럼 모기를 없애서 말라리아를 박멸하는 건, 설령 그게 효과적인 정책이라 할지라도 좌파 딱지가 붙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기생충 질환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로 몰려 정책 결정의 일선에서 대거 물러나게 된다.”(162쪽)



"정부에 분노를 느낀다", "정부에 대해 강한 유감이다"

한나라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안상수가 지난 8일 퇴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란다. ‘정부 비판 =좌파’인 세상에서 언론에 소개된 그의 발언은 그가 좌파임을 선언한 것으로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이게 더 충격으로 다가온 건 안 전 대표가 그간 좌파와의 싸움에서 선봉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현 정권에 비판적인 강남 부자 절의 좌파 주지를 그냥 두면 되겠느냐”(2009.11.13)는 발언을 필두로 “좌파교육 때문에 아동 성폭력 발생”(2010.3.16), “(전교조의) 세뇌교육에 좌파선동 쉽게 빠져”(2010.11.2), “좌파가 디지털 부문 압도(2010.12.7)” “좌파정권 10년 대못 뽑아내야”(2010.2.19) 등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얻은 그의 발언들은 대부분 좌파척결과 관련된 것들이었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사실은 좌파였다니 이제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대운하를 찬성했던 30% 중에도 좌파가 있다면 이 나라는 사실상 적화된 게 아닐런지? 아래 책이 베스트셀러인 것도 이제야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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