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미니스커트

 

 

한 중학교에 미카코라는 여선생이 국어교사로 부임한다. 배구에 대해 아는 게 없음에도 미카코는 남자 배구부의 고문이 되는 황당한 일을 겪는데, 더 안타까운 일은 배구부 아이들 역시 배구에 대해 별다른 열정이 없다는 거였다. 그 나이 또래가 다 그렇듯 여자 생각에만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 배구를 열심히 하게 만들 묘안을 찾던 미카코는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한다.

“시합에서 1승을 하면 가슴을 보여주겠다.”

남중생에게 있어 여자 가슴보다 더 큰 보상이 어디 있을까? 아이들은 당연히 엄청난 의욕을 불태웠고, 그네들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올해 1월 개봉했던 영화 <가슴 배구단> 얘기다. 영화에선 미카코의 약속이 학교 측에 알려지면서 일이 꼬이지만, 중요한 건 미카코가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걸 약속으로 내걸었다는 점이다.

 

 

 

이런 유의 약속은 현실에서도 종종 벌어진다. SBS에서 라디오 DJ로 활약 중인 최화정은 “2010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에 들면 비키니를 입고 진행을 하겠다”라는 약속을 했다. 한국은 나이지리아전에서 2-2로 비기면서 극적으로 16강에 올랐고, 최화정은 하늘색 비키니 차림으로 스튜디오에 나왔다. 그녀 자신은 비키니로 진행할 생각에 “아침부터 몸이 덜덜 떨렸다”라고 했지만, 우리 축구 대표팀이 그것 때문에 16강에 들려고 한 건 아니었을 거다. 물론 연예인의 비키니는 보는 것만으로 좋지만, 최화정은 TV가 아닌 라디오 진행자라 비키니를 입어봤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같은 대회에서 축구팬 김흥국은 16강에 들면 코털을 밀겠다고 했는데, 이거 역시 선수들의 의욕에 별다른 불을 지피지 못했으리라. 코털이 김흥국의 상징인 건 알겠지만, 그가 코털을 민 걸 보고 싶었던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4월 11일 밤, 서울과 호남을 제외한 한반도 남쪽이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북쪽이야 원래 빨간색이 상징이었으니, 한반도의 대부분이 적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 잘한 게 거의 없는 민주당의 업보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잘하든 말든 무조건 지지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현 정부가 오만하다고 비판하지만, 공과에 상관없이 찍어주는데 구태여 민심을 쫓을 필요가 있겠는가? 더 아쉬운 건 투표율이 54%에 그쳤다는 것, 그리고 정부를 심판해야 할 젊은 층의 투표율이 그리 높지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아직 연령별 투표율은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 세 번의 선거에서 20대 투표율이 20-30%대에 그쳤던 걸로 보아 이번 선거에서도 평균 투표율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1,000표 이내의 표차로 진 야당 후보가 많았던 걸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젊은 층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많은 명사들이 약속을 내걸었다. 공지영 작가는 투표율이 70%를 넘으면 “입술 옆에 점찍고 캉캉춤을 추겠다”고 했고, 조국 교수는 “망사스타킹을 신겠다”고 했다. 젊은 층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안철수 교수는 “미니스커트 입고 율동에 노래하겠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조국 교수의 망사스타킹 패션을 보고 싶긴 하지만, 이 정도로 20대를 투표장으로 끌고 오기엔 부족했던 것 같다. 특히 안철수 교수의 공약은 실망스럽다. 젊은 층이 소녀시대도 아닌, 자신의 미니스커트를 보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하다니, 뭔가 큰 착각을 한 모양이다. 그들의 투표 불참이 답답한 현실을 타개할 희망이 안보인다는 거였다면, “70%를 넘으면 대선에 출마하겠다” 정도의 약속은 했어야지 않을까? 70%라는 게 달성하기가 쉽지 않은 수치고, 안철수의 파워를 두려워하는 보수층은 행여 70%를 넘을까봐 투표를 안하는 일도 벌어질 테니, 정말로 안교수가 대선에 나와야 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여자, 그것도 여자 교사에게 가슴을 보여주는 일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미카코는 그렇게 자신을 내던졌고, 학생들은 거기에 즉각 반응했다. 안철수의 미니스커트가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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