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저자가 스무명이 넘을 수가 있어?”

조작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2005년 ‘사이언스’에 실린 줄기세포 논문의 공저자는 무려 스물다섯명이었다. “한 사람이 다섯 줄씩만 써도 논문 한 편 되겠다”고 혀를 차는 지인에게 설명을 해줬다. 요즘같이 분업화, 전문화된 시기에 혼자서 논문을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특히 자연과학 쪽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내가 인류를 이롭게 하는 연구, 예를 들어 뱀에 사는 기생충으로부터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는 물질을 분리한다고 해보자. 우선 아는 분에게 부탁해 뱀을 구해달라고 해야 한다. 뱀이 오면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뱀 백여 마리의 껍질을 나 혼자 다 벗길 수는 없다. 뱀을 무서워하지 않는 연구원 두 명을 뽑아 벗기게 한다. 뱀에서 기생충을 골라 내려면 뱀의 근육 속에 있는 기생충을 기가 막히게 골라내는 연구원 두 명의 손이 필요하다. 그 기생충에서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는 물질을 뽑는 건 또 다른 연구원 두 명이 있어야 한다. 그 물질을 테스트하기 위해 원숭이 엉덩이에 주사해야 하는데, 주사를 맞은 원숭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주사를 맞은 원숭이가 죽어버리면 말짱 헛것이 되니까.

그럼 나는 뭘 하느냐고? 일이 잘 되는지 안 되는지 감독을 하고, 문제점을 분석하고, 일이 다 되면 논문도 쓴다. 이 논문의 공저자는 뱀 구해준 분, 껍질 벗긴 두 명, 기생충을 골라낸 두 명, 목표로 하는 물질을 뽑아낸 두 명, 원숭이 관리자 한 명, 그리고 나, 이렇게 아홉 명이 된다. 여기에 원숭이 엉덩이를 현미경으로 검사해줄 병리 선생이 있어야 하고, “머리카락이 자라는 게 가능하다”고 확진해 줄 피부과 선생님도 필요하다.

그래서 총 11명. 학계에서 이 숫자는 그리 많은 게 아니고, 방대한 작업을 필요로 하는 연구라면 이보다 더 많은 저자가 필요하다.

사실 내 입장에선 저자 수가 많아서 좋을 건 없다. 학교에서 평가하는 논문점수는 일정 숫자를 저자 수로 나눈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연구에 기여를 했는데 이름을 넣어주지 않으면 그 연구원은 삐치게 되고, 다음번에 같이 일하기를 꺼려하게 마련이다. 교수 밑에 있는 조교의 이름을 뺀다면? 그 교수는 아마도 인간성 나쁜 사람으로 소문이 날 거다. 이렇듯 학계에선 조금이라도 기여를 한 사람이면 공저자로 포함시켜 그의 업적을 기린다.

각 방송사에서 주최하는 ‘연예대상’ 혹은 ‘연기대상’을 보고 있노라면 방송사 사람들이 과학자가 된 게 아닌가 싶다. MBC의 경우를 보면 웬만한 상은 다 <선덕여왕>과 <내조의 여왕>이 공동수상을 한다. 가장 우수한 상이란 뜻의 최우수상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해 시상한 것도 웃긴데, 그나마도 두 드라마의 주연들이 사이좋게 공동수상을 한다. 우수상과 신인상도 남녀 각각 두 명씩이니, 이쯤 되면 상 탄 사람이 빛나는 게 아니라 못 탄 사람이 쑥스러워진다.

그래도 MBC는 대상만은 한 명에게 줬지만, SBS는 좀 더 심했다. 대부분의 상을 두세 명에게 공동으로 주더니, 심지어 유재석과 이효리에게 대상을 공동으로 준다. 자사의 시청률에 기여를 한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상을 주는 이런 자세는 앞에서 말한 과학자의 태도를 닮았다.

방송의 과학화, 이런 게 시상식장에서 일어나는 대신 CSI처럼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데 쓰이면 좋으련만.

'과학과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좌파 박멸의 시대  (5) 2010.05.25
삼겹살을 먹자  (3) 2010.04.27
금자씨의 방귀  (0) 2010.03.30
기생충을 닮은 당신께  (1) 2010.02.02
욕먹을 때 떠나라  (1) 2010.01.19
연예대상, 방송의 과학화  (0) 2010.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