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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은 기생충

옜다, 관심!

“영양가가 없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맹활약 중인 김태균 선수가 홈런 두 방을 치던 날, 네이버 기사에는 영양가 타령을 하는 댓글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첫번째 홈런이 1 대 2로 뒤진 상황에서 나온 역전 3점홈런이고, 두 번째 홈런은 4 대 4 동점에서 친 결승 홈런이건만, 영양가 운운하는 댓글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른바 ‘영양사’라 불리는 이 네티즌들이 그런 글을 올리는 건 관심을 받기 위함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같이 놀아줄 친구도 없는 그들로서는 자신이 쓴 글의 조회수가 높아지고 많은 답변이 달리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다. 설령 그게 “네 인생이 불쌍하다” “너희 어머니도 너 낳고 미역국 드셨겠지?” 같은 비난일지라도, 무관심보다는 미움을 받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 조전혁이라는 분이 있다. 신문을 샅샅이 읽는 편인 내가 그 이름을 몰랐던 것으로 보아 존재감이 없던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기야 친척들 이름도 다 모르는 판에, 299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을 어찌 다 알겠는가?

평소 조 의원은 인터넷 정치를 하기 위해 근사한 홈페이지를 열어놓고 있었나보다. 하지만 찾아오는 이는 별로 없었고 “잠은 옵니까?”처럼 건강을 염려해주는 글이라든지 “이 돼지야, 말 좀 들어” 같은 우화적인 글만 드문드문 올라왔다. 조 의원은 좌절했다. 그래도 명색이 국회의원인데 방문자가 이렇게 없다니. 그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 명단을 공개하기로 한 것은 이런 절박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으리라.

명단 공개의 파장은 금세 나타났다. 학부모들은 별반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반면 보수세력은 그를 ‘빨갱이와 맞서 싸우는 투사’쯤으로 추앙하기 시작했고, 개혁세력들은 그의 홈페이지에 몰려가 ‘명단 공개를 철회하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의 홈페이지는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아마도 조 의원은 그 광경을 보면서 득의의 미소를 지었을 거다.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알게 됐고,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글에 스스로 댓글을 다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요즘 들어 부쩍 ‘좌편향된 판결’을 내리던 판사들이 명단 공개를 금지하라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고, 이를 어길 경우 하루에 3000만원씩 배상을 하라고 한 것. 조 의원은 끝까지 싸울 것을 천명했지만,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언젠가 통일운동가로 알려진 L씨의 아들이 사망했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 사실을 안타까워했지만, 일부에서는 “잘 죽었다”는 악플을 남겼다. 해도 너무한 악플에 L씨는 그 글을 쓴 네티즌들을 고소했고, 법원은 그들에 대해 L씨에게 100만원씩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당황한 악플러들은 L씨에게 무릎 꿇고 선처를 호소했다. 그들은 익명성 아래서만 강한 척했을 뿐, 실제로는 소외되고 약한 존재였던 거다. 그건 조 의원도 마찬가지여서, 벌금 강제이행 판결이 나온 뒤 4일을 더 버틴 게 고작이었다. 물론 그 정도의 돈으로 많은 이들에게 이름을 알렸으니 본전은 뺀 것이지만 말이다. 조 의원의 홈페이지 정치가 성공하자 이를 시기한 다른 한나라당 의원들은 잇따라 자기 홈페이지에 전교조 명단을 올리고 있는 중이며, 정두언 의원은 심지어 “전교조 교사가 많을수록 수능 성적이 낮다”는 한물간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있다.

세상은 언제나 일등만 기억하기에 이들의 행동은 별 관심을 받지 못하는 듯한데, 여기서 우리는 소외감에 시달리는 국회의원들이 한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네들의 홈페이지에 가서 이 말을 해주자. 옜다, 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