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내 별명은 쥐였다.
친구들은 날 부를 때 “야! 찍!”이라고 부르거나 “찍민”이라고 했다.
기분은 나빴지만 거울을 보니까 쥐와 닮은 구석이 있는 것도 같아 그러려니 했다.
요즘 모 높은 분에게 사람들이 쥐라고 하는 걸 보니까
그때 생각을 하게 된다.
외모는 타고난 거며, 성형이라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뜯어고치긴 어렵다.
그래서 난 외모를 가지고 놀리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아무리 나쁜 일을 많이 했다 해도 말이다.
그래서 난 그분의 외모를 빗대어 쥐라고 하는 것에 적극 반대한다.
하지만 사람의 행동을 가지고 동물에 비유하는 건 나쁠 게 없다.
행동이란 건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거잖은가?
더구나 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면 얼마든지 동물에 비유해도 된다.
예컨대 우리 검찰을 하이에나에 비유하는 것, 아주 바람직하다.
죽은 동물만 먹는 하이에나처럼 우리 검찰도 살아있는 권력에겐 찍 소리도 못하는 반면,
힘없는 사람이나 퇴임한 대통령을 만나면 마구 물어뜯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 ‘쥐’라는 딱지를 갖다 붙이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까?
연구실에서 이십년간 쥐를 관찰한 결과 쥐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었다.
첫째,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
이거야 뭐, 다들 아는 사실이다. 지하실이라든지 다리 밑처럼 어둡고 음습한 곳은 쥐가 좋아하는 서식처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뭔 일만 생기면 지하에 굴을 만들어 놓고 그리로 숨는다면 그 사람에겐 ‘쥐’라고 해도 괜찮다.
둘째, 잘 도망쳐야 한다.
쥐의 도망치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지하실에 불을 켤 때마다 쥐들이 후다다다닥 사방으로 튀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한 적이 있는데, 침몰하는 배에서 쥐들이 보이는 행동은 존경심까지 든다. 어떻게 그 배가 가라앉을 걸 알고 미리 도망치는지 정말 귀신이 따로없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뭔 일만 생기면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자기 살길만 궁리한다면 우리는 그를 기꺼이 쥐라고 불러줘야 한다. 예를 들어, 이건 정말 예인데, 한일간의 긴밀한 협정을 비밀리에-이것도 특징 중의 하나군!-추진하다 여론의 역풍을 맞아 중단했는데, 그 사람이 “나는 보고받은 적 없다”며 빠져나갔다면 그에게 “영락없는 쥐로군!”이라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셋째, 꼬리가 길어야 한다.
연구실에서 쥐를 가지고 실험을 할 때, 도망치는 녀석을 잡는 방법은 꼬리를 잡는 거다. 쥐에게 기생충을 먹이면서 생각했다. “네가 꼬리만 없었다면 이렇게 실험용으로 전락하진 않았을 텐데.” 그러니까 살다가 꼬리가 긴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쥐’라고 불러주는 게 예의다. 꼬리긴 사람이 어디 있냐고? 문을 잘 안닫고 다니는 사람도 꼬리가 길지만,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기는 사람도 꼬리가 긴 거다. 강남 모 처에 아들 명의로 집을 샀다가 꼬리가 밟혔다든지, 동영상에서 “그 회사를 설립했다”라는 천기누설을 했다든지 하는 일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넷째, 남의 것을 빼앗아 먹고 산다.
다른 동물들은 산에서 스스로 먹이를 구하는 반면, 쥐는 인간 근처에 살면서 쌀가마에서 쌀을 훔친다든지 하는 식으로 삶을 영위한다. 원래 자기 것이 아닌데도 취하려고 하는 자,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쥐’라고 불러도 된다. 이건 정말 예인데, 세계 1위의 공항인 인천공항을, 국민의 것이어야 할 그 공항을 팔아넘겨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사람은 당연히 쥐의 속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KTX를 팔아넘기려는 자도 당연히 쥐와 비슷하며, 지하철 9호선과 남산터널 등을 이미 팔아넘긴 사람은 빼도 박도 못하는 ‘쥐’다.
이 중 한가지 정도만 갖춰도 훌륭한 쥐일 테지만, 혹시 이 네가지 특성을 모두 가진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설령 있다면 그분은 ‘쥐 같다’는 차원을 넘어서 ‘쥐 그 자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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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교수님, 이러다 '서민체' '서민풍'이 생겨나겠어요.ㅋㅋ 생물학, 기생충학, 정치학의 절묘한 조화!!!
Reply: 서민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부끄럽습니다. 아직까진 위에서 연락이 없는 걸로 보아 안읽으셨나봐요. 듣보잡이라 다행^^
눈사태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글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공감하구요.
그리고 참고로 저는 어느 프로야구팀의 오랜 팬인데요, 인터넷상에서 우리팀을 자꾸 엘쥐, 칠쥐라고 불러대는것이 너무나도 싫습니다. 이유는 이미 서민님이 써주셨구요. 우리팀 성적후진걸로도 충분히 짜증나는데 쥐라뇨...그냥 엘지라고 부르던가 아님 말던가를 해주었음 좋겠습니다..쥐라뇨..
Reply: 서민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흠, 제 라이벌 팀을 응원하시는군요 전 두산팬! 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가 글엔 안썼지만 이름 가지고도 놀리면 안되죠! '지'가 들어간다고 '쥐'라고 하는 건 나쁩니다!
찍민씨 멋져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Rodentian~ 뭐 설치류가 다 나쁜건 아니죠. 하지만 고통스런 세균으로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사람들의 삶을 괴롭게 하기에, 그 외모가 더욱 쥐 같이 보이는것이 문제라는것이겠죠?
쓰신 내용에 공감합니다.
첫 임기 시작과 동시에 공기업 민영화를 은근 슬쩍 말할때 부터 전 바로 인천공황과 KTX가 생각나더군요.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잘 되가는 공기업을 50:50 지분 매각 안합니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공황이라 불리는 인천공황.
상식적으로 도를 넘은 행위라 보여짐니다.
나라가 망해도 기업은 산다란 말이 지금의 한국경제라 말할수 있겠죠.
dotory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우와! 진짜 멋지다!
dotory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우와! 진짜 멋지다!
사생팬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ㅍ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간만에 웃습니다.
어제 문득 무표정하게 있다가 전원이 꺼진 모니터에 비친 제 얼굴을 보니
무표정이 아니라 찌푸린 표정인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 때 별명이 '미소'인적도 있었는데 (대학 때 제가 인기관리차 늘 웃고 다녔죠. ㅜ,.ㅜ)
이젠 아무 생각 없으면 찌푸린 표정이라니....
ㅉㅉㅉ
이게 다 쥐 때문입니다.
어릴적 푸세식 화장실 밑에 살던, 마당 한 켠 하수도에서도 가끔 튀어나오던
그 까맣고 꼬리가 길며, 물에 젖었던 쥐를 잊지 못하게 만드는 그 쥐가 정말 싫어요.
부천남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사실 정치에 별관심이 없어서,왜 그분을 욕하는지 정확히 몰랐었고,,
또, 아무리 인터넷상이라지만,,외모를 비하해서 쥐어쩌구 하는 댓글을 볼때마다,,
할일없고 능력없는 백수들의 댓글쯤으로 무시했었는데,,
오늘 능력있는 교수님의 풍자글을 보니까,,
그분이 정치를 못하긴 못했나보네요..
발등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교수님.
우리집에 쥐가 살아 쥐잡으려 치즈올려 쥐틀설치해도 치즈만 먹고 잡히지 않는 쥐는 어쩌나요.
고교교사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는 정말 남들이 그런 표현을 할 때 그 인간이 쥐라고 여기고 싶지 않았는데 쥐20 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린 죄로 박 모 강사가 검찰의 기소로 법원에서 벌금폭탄을 맞고 난 뒤 그 인간의 별명이 확실해졌다는 걸 인정합니다. 포스터 쥐벽서의 진짜 핵심은 쥐그림 그 자체가 아니었다는 창안자인 박 모 강사의 주장을 자기들 멋대로 규정하여 기소한 그 이면에는 "어딜 감히...위대하신 분을 ...."이라는 은유를 암묵적으로 강조한 사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80년대 주한미군 워커 사령관이 한국인들을 가리켜 레밍쥐로 비하한 것도 결국 이런 저열한 깜도 안 되는 사기질이 농후한 인간을 국가수장으로 뽑게 될 것을 예언하지 않았나하는 상상까지 하게 되는 글로 읽히네요.ㅋ
문제는 그를 뽑은 유권자들도 태평양 연안에서 태풍보다 더 센 허리케인급으로 불어닥칠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를 알아차리지 못하여 결국 자신들의 잇속에만 치중하다 속아 넘어가 그 인간을 두고 현실적 비아냥이 난무하는 요즘이다보니 그들도 그의 종에 속하는 설치류로 봐도 괜찮겠지만 개과천선이라고... 속았다는 걸 알아차린 후 분노하며 성찰하는 유권자들이라면 당연 그 인간에게 남은 별명은 쥐새끼라는 별명이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지는 요즘입니다. CNN에서도 현 정권들어 표현의 자유가 훼손됐다는 뉴스를 내보냈더군요. 국제적인 망신이 바로 이런 걸 두고 말하죠. 국격요? ㅋㅋㅋㅋㅋㅋ: South Korean 'joke' can lead to prison. www.cnn.com/2012/07/03/world/asia/south-korea.../index.html
벼리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교수님 멋지십니다 감탄했어요 구구절절 옳은말!
쥐는어두운감방으로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정말 유쾌하고 속시원한 지적이시네요ㅋㅋ
쥐는어두운감방으로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정말 유쾌하고 속시원한 지적이시네요ㅋㅋ
한정문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와우~~글이 멋지십니다.
시원~시원
d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외모도 쥐새끼, 행동도 쥐새끼인 영락없는 쥐새끼 한마리가
웬걸, 청기와에 떡하니 나앉아 일국의 대통령을 하고있대나 뭐래나...
그나라가 우리나라인게 끔찍할 따름이지..암..
류명진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와 진짜 대박이다 ㅋ
어떻게 그걸 이렇게 풀이하고 글을 쓸 생각을 하셨지?
정말 글 내공이 대단하신 것같아요.
내용도 너무 재밌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
자발적한량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런 문장력이 샘솟아나오는 두뇌와, 써낼 줄 아는 손이 부럽습니다..ㅎㅎ
콩탁구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대박~~~~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입이 한참동안 다물어지지 않는군요 하마터면 침까지 흐를뻔 과학자에게 상상력은 필수라는 어느 유명한 교수님 말씀이 떠오릅니다^^
콩탁구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대박~~~~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입이 한참동안 다물어지지 않는군요 하마터면 침까지 흐를뻔 과학자에게 상상력은 필수라는 어느 유명한 교수님 말씀이 떠오릅니다^^
촌철살인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씌...내용 읽고 댓글 쓰려고 내려오다가 다른 분들 댓글 읽는 재미에...쓰려고 했던 내용을
까먹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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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