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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권하는 사회

월드컵 감독과 국무총리



1. 월드컵 대표팀 감독

선수 시절 많은 업적을 쌓은 뒤 감독으로도 성공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홍명보는 드물게 올림픽 동메달의 금자탑을 쌓은, 성공한 선수이자 감독이었다.

그런 홍명보에게 이번 월드컵 대표팀 감독은 그리 달갑지 않은 자리였으리라.

우리나라의 전력으로 보건대 16강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닐 테지만,

예선탈락을 할 경우 극성스러운데다 눈까지 높아진 축구팬들이

그가 애써 만든 공든탑을 일거에 무너뜨릴 거였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1년 전 이맘때 기사를 보면 홍명보가 대표팀 감독 자리를 고사했다고 하는데,

그도 사람인지라 거듭된 협회의 청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벨기에전을 다섯시간 앞둔 현재,

우리나라의 예선탈락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일본과 이란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예선통과는커녕 1승도 올리지 못한 현실을 감안하면

혹시 탈락한다 해도 그게 그리 욕할 일만은 아니다.

사우디와 일본 등 축구에 투자를 한 아시아 국가가 제법 있었지만,

어찌된 게 유럽. 남미와의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우리가 이기기 힘든 이란이 이번 대회에 처녀출전한 보스니아에게 13으로 진 걸 보면,

유럽 예선에서 탈락한 국가들이라고 해서 우리가 이긴다는 보장은 없어 보이며,

우리나라의 피파랭킹이 57위라는 것도 실력에 비해서는 잘 봐준 것일 수 있다.

축구 인프라로 봤을 때 우리나라가 16강에 두 번이나 든 건 어찌보면 기적이다.



문제는 다음에서 생긴다.

K리그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월드컵 때가 되면 모두가 축구팬이 되어 한국팀을 물어뜯기 바쁘다는 것.

팀 전체를 욕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니,

감독이나 공격수 한 명 정도를 골라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게 그간의 관례였다.

이번 대회에서 박주영이 못한 건 사실이지만,

다른 누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면 결과가 달랐을지 의문이다.

감독인 홍명보에게도 어김없이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 축구의 현주소에 대한 이해 없이 희생양만을 찾는 작금의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다음 월드컵에서는 감독을 찾는 일이 훨씬, 지금보다 10배는 더, 어려워질 것 같다.

 



2. 국무총리 사태

방황을 거듭하던 국무총리 인선은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세월호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혔던 정홍원 전 총리가 다시 총리로 북귀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진 것.

아무래도 이건 자신들이 내세운 총리후보가 번번히 퇴짜를 맞자 여권이 삐져버린 소치로 보인다.

이런 어이없는 결정에 분노가 느껴지기보단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개인적으로 문창극을 좋아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시절 편향으로 일관된 칼럼을 썼던 경력 때문인데,

특히 문제가 된 몇몇 칼럼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교회에서 한 발언 때문에 친일파로 몰리는 걸 보면서 좀 씁쓸했다.

종교의 언어와 현실의 언어는 엄연히 다르며,

어떤 사건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게 반드시 그 사건을 긍정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아이를 데려가신 것도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을 내 애가 잘 죽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사람은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야당과 진보매체들은 문창극을 공격했고,

그가 거기에 굴복해 사퇴를 하자 이런 후보를 내세운 박근혜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식으로 정부를 비판했다.

새로운 내각 후보가 들어설 때마다 이런 한심한 후보는 없었다면서 욕을 하고,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게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잡은 게 아닌가 싶기까지 했다.

검증을 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라,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최소한 일은 하게끔 해줘야지 않느냐는 말이다.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분들의 열악한 인프라를 감안한다면, 문창극이 꼭 그렇게 나쁜 후보는 아닐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총리는 헌법상의 지위에 걸맞은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리는 아니다.

대통령이 잘못한 일을 대신 사과하거나 세월호처럼 나라에 큰 변이 있을 때 희생양이 되는 정도가 지금까지 총리들이 수행했던 일인데,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꼼꼼하게 검증을 해야 할까?

총리보다 몇십배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자리가 바로 비서실장인데,

그 자리엔 초원복집 사건을 비롯해 몇 번의 닭짓을 하신 분이 일말의 검증과정도 없이 앉아 계시다.

그 비서실장보다 훨씬 더 중요한 대통령을 뽑을 때 우리는 얼마나 검증을 하는지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역감정과 색깔론에 매몰돼 비리투성이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게 바로 우리 모습 아닌가?

문창극에게 가해졌던 정도의 꼼꼼한 검증과 그에 따른 여론이 심판이 있었다면,

교회 강연과는 차원이 다른, 주가조작과 관계가 있다는 강력한 의심을 받아온 분이 대통령에 당선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한  ㅅㅊㅇ ㅂㅈ ㅇㅇㅁ ㅎㅁㄷㄷ ㅁㅎㅅㄴ ㅂㅇ  대통령에 당선되는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큰 자리들에 대한 검증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면서

총리 같은 잔챙이 자리에 오르고픈 사람들을 굴러 떨어뜨리는 게 정치의 본분은 아니어야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은 이런 행동이 깨끗한 사람마저 총리직을 수락하기 꺼려지게 하며,

나아가서는 저들에게 어렵게 만든 인사청문회를 없앨 계기를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선거에서 졌다고 교육감 선거를 없애자는 분들인데 인사청문회쯤이야 뭐 대수겠는가?

저들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지금은 좀 자중할 때다. 최소한 총리에 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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