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의 시청률이 10%를 넘나드는 건 그게 공중파가 아닌,
케이블이라는 점에서 충격 그 자체다.
이 드라마를 만든 신원호 피디는 2011년 말 KBS에서 tvN으로 건너왔다.
KBS에서 예능을 담당했던 신피디가 갑자기 드라마를 하겠다고 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신피디가 만든 응답하라 1997은 케이블 드라마로서는 전례가 없는,
평균 4%의 시청률로 대박을 쳤다.
‘응답하라 1994’는 전편의 인기에 힘입은 속편이라는 점에서
신피디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은 1997년을 호출하는 것이었으리라.
외환위기를 앞두고 우리나라 1등신문은 "위기가 아니다"라고 예측,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왜 하필 1997년일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1997년은 그다지 좋은 뉴스가 없다.
새해 초부터 한보철강이 부도가 났고, 그 청문회로 인해 정국이 시끄러웠다.
7월에는 기아가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경제가 총체적 불황에 빠진다.
결국 우리나라는 그 해 11월,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함으로써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린다.
수많은 기업이 줄도산하고 거리에 노숙자가 넘쳐나게 된 것도 그 해,
신원호 피디는 1997년이 뭐가 좋다고 그 시절을 드라마로 만든 것일까?
그리고 그 드라마는 어떻게 히트할 수 있었을까?
1997년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1998년에 불길한 일이 벌어졌다는 뜻,
그렇다면 1998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조사하는 게
신원호 피디의 의도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1998년 위키백과를 뒤지다보니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았다.
오랜 기간 정치와는 무관한 삶을 살던 한 분이 그 해 3월 한나라당에 입당한다.
그가 갑자기 정치판에 뛰어든 이유는 딱 하나,
문민정부를 자처한 김영삼 대통령이 나라를 부도나게 만들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난데없이 박정희 신드롬이 퍼졌고,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었던 그분이 “어 그렇다면 아버지를 앞세워 뭔가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그 해 4월 대구 달성에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그분이 내세운 구호는 다음과 같았다.
“박정희가 세운 경제 박근혜가 지킨다”
거기에 더해 연설 중간중간 “아버지!”를 수도 없이 불렀다고 하는데,
그 전략이 먹혀들면서 그분은 생애 첫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고,
그로부터 15년 후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다.
그러니까 1998년은 그분의 신화가 시작된 해,
신원호 피디는 그래서 1997년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반대하는 것은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며
그 반대자들은 무조건 좌파가 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아무리 사랑 얘기로 포장해도 그분의 데뷔 전을 그리워하는 ‘응답하라 1997’은
전형적인 종북.좌파 드라마이며, 그 드라마를 만든 신원호 피디는 종북.좌파다.
응답하라 1997에 열광했던 4%의 고정 시청자들 역시 종북. 좌파인 셈.
국정원은 댓글을 통한 심리전만 할 게 아니라
이렇게 교묘하게 현 정부를 반대하는 드라마를 적발해 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이딴 일을 이미 좌파로 분류된 기생충학자가 해야겠는가?
한 가지 더. 신원호 피디가 응답하라 1997 다음에 응답하라 1994를 만든 이유가 뭘까?
서태지 때문에? 절대 아니다.
그의 진짜 목적은 응답하라 1991을 만드는 것인데
갑자기 6년 전으로 가버리면 의도를 들킬까봐
중간 단계로 아무 의미없는 1994를 만든 후 그 다음에 1991을 만들려는 거다.
참고로 말하면 1992년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한 분이 현대건설 회장직을 박차고 나와 정치를 시작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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