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과학자



“2010년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에서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1위를 차지했고,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2위에 올랐다. 강 의원은 3억2487만원의 후원금을 모금해 1위에 올랐다.”


작년 한 해 동안 의원들이 받은 후원금 순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과학자들이 작년에 받은 연구비 순위를 발표하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연구비 규모가 많이 커졌으니, 이 분야에서 1등을 하려면 10억원 이상은 받아야 하리라. 그렇게 따지면 정치인의 후원금은 많은 게 아니다. 물론 신고한 게 다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하고 있긴 해도, 과학자와 정치인에겐 공통점이 있다. 첫째, 남의 돈으로 일한다는 것. 과학자는 정부나 기타 단체로부터 돈을 받아 연구를 하고, 정치인은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정치를 한다. 둘째, 큰소리를 잘 친다. 정치인이 “나를 뽑아주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며 자신도 안 믿을 공약들을 남발하는 것처럼, 과학자 역시 자신이 인류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연구를 한다며 연구비를 받아낸다. 가끔 연구비 계획서 심사를 할 때마다 놀란다. 자기 연구에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우리나라 과학은 수렁에 빠져 다시는 헤어나지 못할 것처럼 써놨으니 말이다. 나라를 구한 정치인이 몇 되지 않는 것처럼, 획기적이라고 할 만한 연구도 가뭄에 콩 나듯 나오니, 허풍이란 면에서 보면 둘다 피장파장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일정 기간마다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 국회의원은 자신의 정치활동에 따라 4년마다 선거를 치르고, 과학자는 그간의 연구 활동을 기준으로 ‘재임용’이나 ‘승진’ 심사를 받는다. 선거에서 떨어진 정치인이 야인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연구자도 재임용에서 탈락하면 바로 잘린다.



이렇듯 비슷한 점이 있지만, 둘 사이에는 차이점도 존재한다. 잘못이 있을 때 그걸 걸러내는 시스템이 있느냐가 첫 번째 차이다. 과학자들은 논문을 조작하거나 남의 것을 표절하면 그에 상응하는 징계를 받고, 심지어 해임을 당하기도 한다. 몇 년 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전 교수가 해임된 이유도 논문 조작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 정치계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청원경찰들이 로비를 해달라며 준 돈을 받아 물의를 빚었던, 소위 ‘청목회 사건’의 핵심 인물인 강기정 의원이 후원금 액수에서 1위에 오른 걸 보라. 자신의 저서가 재판에서 표절 판결을 받고도 여전히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전 모 의원도 빠질 수 없다. 이들 외에도 각종 비리에 연루된, 그러면서도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는 정치인은 부지기수다.


둘째, 뻔뻔함의 정도가 다르다. 정치인들은 의혹이 불거지면 무조건 혐의를 부인하고, 자신을 죽이려 한다며 음모론을 펴고, 소송을 하며 시간벌기를 한다. 반면 과학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순순히 징계를 받는다. 권장할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 카이스트 교수가 자살한 이유는 연구비로 받은 돈 중 2200만원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정치인이 그 정도 돈을 받았다면 “그게 무슨 죄가 되느냐”며 항변하기 바빴을 터. 과학자가 정치인보다 욕을 덜 먹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군부독재가 끝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지 벌써 25년이 됐다. 이만하면 정치인도 과학자 수준의 평판을 받아야 마땅한 기간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치인이 갑자기 덜 뻔뻔해지기를 바라는 건 불가능해 보이니, 잘못을 걸러내는 시스템이라도 정착되었으면 한다. 다들 아시겠지만 그 시스템의 상당부분은 국민이 만드는 것이고, 선거를 통한 응징은 그 한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