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박멸의 시대

“기생충은 망국병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슬로건이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호환이나 마마도 아니고 암처럼 무서운 병도 아닌 기생충을 왜 망국병이라 규정하고 탄압을 했을까 의문이 간다. 
내가 이해를 하건 못하건 우리 정부는 기생충 박멸협회를 만들어 기생충을 없애기 시작했는데, 그 바람에 한때 70%를 웃돌던 기생충 감염률은 점점 줄어들어 3% 수준에 이르렀고, 지금은 어쩌다 회충을 보면 반갑고 대견하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의 기생충 감염률은 70년대 우리 국민이 원하던 그 수준까지 떨어진 거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인류의 태동과 더불어 우리 몸에 갖고 있던 기생충이 없어졌는데 아무런 일이 없을 리는 없다. 
2002년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소위 선진국에서는 지난 30년간 아토피성 피부염이 2~3배 증가해 어린이들의 15~20%가 아토피로 고생한단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20년간 천식이 3배나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이게 기생충과 무슨 상관있느냐고 하겠지만, 기생충이 없어진 것과 알레르기가 증가한 건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게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루에 수십 번씩 설사를 하게 만드는 궤양성 대장염도 기생충의 감소와 더불어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심지어 당뇨병도 기생충과 관계가 있다니, 이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괜히 기생충 없앴어! 안에 몇 마리 있다 한들 우리가 밥 한 숟갈만 더 먹으면 되는데!”

갑자기 기생충 이야기를 꺼내는 건 요즘 우리나라가 70년대로 돌아간 느낌을 받아서다. 물론 처단 대상은 그때랑 달라서, 지금 정부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좌파는 망국병이다.” 

이념 때문에 전쟁까지 겪은 우리나라에 좌파가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느냐 싶지만, 현 정부가 규정하는 좌파가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이니 문제다. 
성장보다 복지를 더 우선시한다는 좌파의 고전적인 정의는 온데간데없고, 광우병이 두려워 거리로 나가도 현 정부 기준에 따르면 좌파가 되고,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국민이 70%라면 우리나라 사람의 70%가 좌파인 거다.

구충제를 먹이면 되는 기생충과 달리 이 많은 사람들을 다 잡아 가둘 수 없는 게 현 정부의 고민. 그래서 우리 정부는 본보기로 몇 사람을 처단함으로써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미네르바를 잡아 가둠으로써 인터넷을 깨끗이 하고, KBS와 MBC를 장악함으로써 방송을 정화한다. 급기야 전교조 교사 134명(공립)을 파면·해임하고 35명(사립)에 대해선 재단에 파면·해임을 요구키로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진보정당에 돈을 후원했다는 게 그 이유인데, 5년에 30만원 정도니 한 달에 5000원꼴. 훨씬 더 많은 돈을 한나라당에 낸 교장들에겐 책임을 묻지 않는 걸로 보아 액수가 너무 적어서 이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별반 분노하지 않는다는 거다. 방에 앉아 컴퓨터만 하던 미네르바가 잡혀 들어간 것처럼, 어느 누구에게 그 화살이 돌아갈지 모르는 판국인데 말이다. 

어쩌면 최근 2년반 사이 황당한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 ‘탈 면역’이 돼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유시민은 그의 저서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유럽에선 수백 년의 투쟁 끝에 만들어진 민주주의라는 아름다운 제도를 우리나라는 아무 노력 없이 얻었기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꽃피게 하려면 후불로라도 그 비용을 완납해야 한다고 했다. 6월2일은 우리가 조금이나마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날. 누가 우리 삶을 더 낫게 해줄 것인지 꼼꼼히 따져보고, 반드시 투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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