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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권하는 사회

질문 기피하는 대통령



"질문 있나요?"
내가 경험한 교수들은 수업이 끝날 때쯤 질문을 받았다. 대부분의 학생은 질문을 하지 않는데, "그것도 모르냐"는 타박을 받을까봐, 혹은 그 질문으로 인해 쉬는 시간이 짧아져 다른 학생들의 원성을 들을까봐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한두 명 정도는 있기 마련인데, 그 학생들은 주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매우 형이상학적인, 어려운 질문을 해댔다.
그런 기억이 강하게 남았는지라 교수로 막 부임했을 때 난 되도록이면 질문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행여 학생들이 내가 모르는 질문을 할까봐 걱정됐으니까. 교수 워크숍 같은 데를 가면 "좋은 교수는 모른다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맨날 모른다고 하면 좀 없어 보이잖은가.
 




처음에 내가 썼던 방법은 '질문 있나요'라는 말을 안 하는 거였다. 하지만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라고 말과 함께 나가려는데, 그 틈을 비집고 질문을 해대는 학생이 있었다. 역시나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고, 질문도 "기생충의 기원은 무엇인가요?" 같은 난해한 것들이었다.
그 후부터 난 수업이 끝나고 나면 아무 말 없이 후다닥 교실 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실을 나와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한 학생이 "교수님!" 하고 부르며 쫓아오기 시작했다. 난 바람같이 달렸지만 그 학생을 따돌릴 수 없었다.
이제 틀렸구나 싶어 학생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교수님, 출석부 놓고 가셨는데요." 이건 물론 초창기 얘기고, 부임한 지 12년째가 된 지금은 "질문 있나요?"란 말을 망설임 없이 한다.




취임 초기, 이명박 대통령은 질문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신년 국정연설도 TV 화면 앞에서 준비된 원고만 읽을 뿐, 기자들의 질문을 일체 받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대통령을 이해할 수 있었다. 초창기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 역시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저러는 것일 게야. 시간이 흘러 자신감도 생기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대통령은 그 후로도 계속 질문을 받지 않았고, 신년 국정연설에서는 3년 연속으로 원고만 읽고 말았다. 얼마 전 있었던 기자 간담회에서도 대통령은 달랑 질문 세 개만 받고 간담회를 끝냈다. 개헌, 남북관계, 과학벨트 등 민감한 질문이 이어지자 “이상으로 기자회견을 모두 끝내도록 하겠다”며 자리를 서둘러 정리했다고 한다.
지난 1일 신년 방송좌담회에서는 개헌의 후속조치를 묻자 "다음에 정장하고 넥타이 매고 답변하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넥타이에 답변을 대신 해주는 특수 장치가 있는 게 아니라면, 이런 식의 질문 기피는 좀 의아하다. 취임한 지도 3년이 지났으니 더 이상 초보 타령을 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이러니 동아일보마저 “이 대통령은 취임 3년이 되도록 치열한 현안 문답이 오가는 제대로 된 기자회견을 한 적이 없다”고 지적하는 거다.




혹시 대통령이 아직도 아는 게 별로 없는 걸까.
현대건설 사장까지 했던 분인데 설마 그럴 리가. 어쩌면 대통령은 학창 시절 질문을 엄청나게 많이 하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했던 학생었으니 질문의 수준도 무척 높았으리라.
하지만 만족할 만한 답변을 해주는 사람이 없자 대통령은 점차 회의에 빠지고,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것으로 지적 호기심을 해소했을 것이다. 질문을 하려고 안달인 기자들을 보면서 대통령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틀림없다.

질문 그거, 내가 많이 해봐서 아는데, 말짱 소용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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