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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권하는 사회

창의력 있는 거짓말을

내가 아는 사람 중 조지 워싱턴이란 자가 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워싱턴에게 작은 도끼 한자루를 선물했다.
어린애한테 도끼를 선물하는 아버지의 심리를 우리가 이해하긴 어렵지만, 워싱턴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죄다 도끼로 베어버렸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아끼던 체리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우지끈!”

나중에 집에 들어온 아버지는 쓰러진 체리나무를 보고 화가 났다. “누구야?”

워싱턴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오늘 나무 한그루를 잃었지만, 정직한 아들을 얻었구나.”
 



이 이야기에 감화를 받은 나머지 난 아버지가 “계단에 묶어둔 고양이 누가 풀어줬어?”라고 물었을 때 정직하게 앞으로 나서는 실수를 저질렀다.
아버지는 곧 작업복으로 갈아입으셨고, 난 그날 먼지가 나도록 맞았다. 워싱턴의 신화를 의심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두시간 후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워싱턴이 자백하지 않았더라도 도끼를 선물받은 그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 자수가 최선의 선택이었고, 아버지는 체리나무를 그렇게 애지중지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세상이란 정직함만으론 살 수 없다는 것 등등이다.
그때의 깨달음이 없었다면 내가 과연 교수가 될 수 있었을까 의심이 갈 정도로 세상은 거짓말로 해가 뜨고 해가 졌다.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답게 내가 살면서 겪은 거짓말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 봤다.

첫째, 모르쇠형.

청문회 때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며, 최근 민간인을 사찰해 조사를 받고 있는 공직자윤리지원관실의 이인규 실장이 쓰고 있는 방법이다.
남이 믿건 안믿건 그는 “김종익씨가 민간인인 줄 몰랐다”고 열심히 우기는 중인데, 이 거짓말은 “무식은 죄가 아니다”라는 옛말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못배워서 억울한 일이 많았던 우리 현대사도 이런 거짓말의 유행에 일조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고 얼굴만 두꺼우면 되는지라 가장 널리 쓰이는데, 그러다보니 이젠 좀 지겹다.



 
둘째, 유머형.

순전히 웃겨볼 목적으로 자기도 믿지 않을 말을 둘러대는 걸 일컬으며, 많은 웃음을 주긴 하지만 상황이 더 악화되는 부작용이 있다.
1987년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 끝에 숨진 게 세상에 알려졌을 때 당시 경찰은 고문사실을 부인하며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는데, 숱한 사람을 웃긴 그 발언이 아니었던들 6월 항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성추행 의원으로 낙인찍힌 최연희 의원도 신문기자의 가슴을 만져 파문이 일자 “식당 주인인 줄 알았다”는 발언으로 실소를 자아냈고, 음주사고를 낸 모 연예인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고 해 화제가 됐다.
 
세째, 허점 공략형.

약간의 빈틈을 낚아채 흐지부지시키려는 전략으로, 고위층이나 식자층에서 많이 쓰인다.
예를 들어 “기분도 꿀꿀하고 해서 바베큐 치킨집을 인수했다”고 했다가 문제가 되면 “주어가 없지 않느냐? 내가 인수했다는 건 아니었다”는 식으로 빠져나가는 게 여기 속한다. 상대방의 반격을 무력화시켜 허탈하게 만드는 고급 거짓말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위장형.

내용물은 같지만 포장만 달리함으로써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수법.
전국의 산들을 전선으로 연결해 케이블카가 다니게 하려는데 반대가 만만치 않은 경우 “태풍을 예방하기 위해 큰 산들을 정비하는 4대산 사업을 실시하겠다”고 하면 금방 호응이 좋아지는 게 대표적인 예다. 민도가 낮고 묻지마 지지가 많은 곳에서 효과적이다.
 
최근 외교부 장관 딸에게 특혜를 줘 합격을 시킨 외교부 직원들이 “장관 딸인 줄 몰랐다”고 해 화제가 됐다.

또 모르쇠형이라니 너무 상상력이 빈곤한 게 아닌지 아쉽다. “장관 딸에게 특혜를 준 게 아니라 다른 참가자에게 불이익을 준 것”이라고 한다든지-두번째 유형-“장관 딸이라기에 뽑아놓고 괴롭히려고 했다”-네번째 유형-처럼 말하면 얼마나 창의적인가?

앞으로는 모르쇠보다 창의력 있는 거짓말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왕 하는 거짓말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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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 2010.10.22 03:20

    빵 터졌어요. ㅋㅋㅋ

  • 서민 2010.10.22 13:55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호호. 이 글이 재평가되는군요!!

  • 옛날 팬 2010.11.07 23:29

    혹시 마태우스님이세요? 10년도 더 전에 단행본 읽으며 낄낄대던 기억이 납니다^^

    경향신문에서 연결되어 우연히 방문한 블로그에도 재미난 글이 '우글우글'하군요.

    거짓말이라도 좀 성의껏 하면 더러는 속아줄 의향도 있는데 뻔한 거짓말을 배째라 식으로 막 던지니 피로감이 대단합니다. 창의적 거짓말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ㅋㅋ

    블로그 처음 온 주제에 뭔가 인상을 남기고 싶어 태클을 좀 걸겠습니다. 김ㅅㅎ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했다' 발언은 들을 때마다 기분이 쌉싸름해져서요.
    저는 음주운전 자체에 대해 극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김상혁이 잘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만, 저 발언 자체를 놓고는 '오해다'라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는군요.

    다 아시겠지만 술을 마신 사실까지는 인정하나 법적으로 음주운전은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잘못된 대처와 이후 몇 번의 연속된 판단미스로 이제는 연예계에서는 영영 묻히게 되었네요^^;

    마태우스님은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해주셨을 뿐이나 평소에 뭇 게시판에서 까이는 양상이 세기초의 문희준 공격처럼 보이는 바 있어 오버해보았습니다.

    ==========================================
    그런데 거짓말 유형 중, 대중은 모르쇠형에 유난히 관대하다고 느끼는데 그 이유는 재미와 흡입력이 없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정말 모르는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 서민 2010.11.10 18:45

      앗 제가 마xxx인 걸 아시다니, 갑자기 민망하옵니다. 그 시절을 잊고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 중인지라^^
      님의 항변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 면도 있군요. 법적인 측면에서 말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법을 떠나 일반적인 정의로 보면 0.03이라고 해서 음주운전이 아닌 건 아니지 않을까요?
      뭐, 이거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글구 모르쇠형에 대해 관대한 건
      무식은 죄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우리의 오랜 경험에 의해 각인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 김준하 2010.11.10 11:14

    4대산 사업에서 빵터졌네요
    회사에서 이러면 곤란한데...

    • 서민 2010.11.10 18:45

      아이고 오래 전에 쓴 글인데 재평가를 받네요 감사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