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이 되고 싶다

 

 

2001년, 경기도 양주에서 미라 한 구가 발견됐다.

사람이 죽으면 내장을 제거하고 인공적으로 미라를 만드는 이집트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미라는 회곽묘라고,

조선 중기 이후 양반들이 쓰던 무덤에 의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자세한 기전은 모르겠지만 서울의대 신동훈 교수에 의하면

회로 인해 관 밖이 완전히 차단되고

회가 굳으면서 발생하는 100도 이상의 열로 인해 멸균이 되면서

시체가 썩지 않고 미라가 된다고 한다.

아무튼 이 미라는 5세 정도의 남아였고,

폐 쪽에 출혈이 있는 걸로 보아 결핵이 사인이 아닐까 추정됐다.

결핵 이외에도 이 아이는 간염바이러스에 걸려 있었고,

그 시대 사람답게 회충과 편충을 비롯한 각종 기생충에 걸려 있었다.

그래도 그 아이한테서 간디스토마의 알이 나온 건 좀 의외였다.

간디스토마는 자연산 민물회를 먹고 걸리는 기생충이니까.

아무래도 그 아이는 양반집 자제답게 5세 이전부터 회를 먹었던 게 틀림없다.

 

 

미라에서 나온 간디스토마의 알

 

 

 

 

그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어릴 적부터 회에 관해 조기교육을 받았다.

8살때쯤인가 아버지가 접시에 회를 담아놓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

“이거 비싼 거니까 먹어야 해!”

어린 아이가 거부감을 느낄 날생선을 묵묵히 먹었던 건

아버지가 좀 무서운 분이어서였겠지만, 비싼 거라는 게 묘하게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억지로 입에 넣은 회는 그다지 맛이 없었지만,

회에 바른 초장은 그런대로 달콤했다.

‘이거 맛있는데?’

그러니까 내가 회에 맛을 들인 건 순전히 초장 때문이었다.

이런 식성은 커서도 변하지 않아,

남들이 고추냉이에 회를 찍어먹을 때도 난 촌스럽단 말을 들어가며 초장을 몇 접시씩 먹어치웠다.

내가 고추냉이의 맛을 알게 된 건 40이 넘어서지만,

초장을 선호하는 습관은 여전하다.

 

 

고종석 선생님

 

 

우리 사회의 멘토라 할만한 분 중 고종석이란 분이 계시다.

지금의 내가 있게 해준 강준만 교수님은 고종석 선생을 ‘한국에서 가장 글 잘쓰는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글 때문에 <서얼단상>을 비롯한 고종석 선생의 책을 죄다 사서 읽어봤고,

강교수님은 역시 진실만을 말씀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그 이후 고종석 선생은 내가 사숙하는 분이 되었고,

그분의 문체를 흉내 내려고 제법 애를 쓰기도 했다(가 포기했다).

얼마 전 어느 분이 내게 고종석 선생을 아시냐고 하기에

“저야 당연히 알죠! 글 제일 잘쓰시는 분이잖아요!”라고 답했더니

고종석 선생이 트위터에다 내 얘기를 했단다.

고선생님이 나를 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차서 검색을 해봤더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경향에 글을 쓰면서 즐거운 순간들을 많이 경험했다.

내가 신문에 나는 걸 기뻐하는 어머니께 효도를 할 수 있는 것도 그 하나지만,

감히 범접하지 못할 훌륭하신 분들과 연결이 된다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

언젠가 조국 교수님이 내 칼럼을 트위터에서 언급했을 때도 “와 조국교수님이 날 알아!”라고 기뻐했었는데,

고종석 선생이 내 칼럼을 와사비라고 칭해 주시다니!

그날은 기분이 좋아서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누워서 생각했다.

초장이라고 해주셨다면 더 좋았을 뻔했다.

 

 

* 갑자기 궁금한 점. 미라가 된 그 아이는 살아생전 뭐에다 회를 찍어먹었을까? 네이버를 찾아보니 그 시절에도 초장이 있었다고 하고, 겨자장을 찍어먹었단 설도 있다. 만일 전자라면 난 우리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거다.

** 짐작하시겠지만 이 글은, 자랑질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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