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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은 기생충

침묵한 이유



안녕하세요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께 죄송했던 한달이었습니다.

남은 생애를 글을 쓰면서 살겠단 사람이 이런 시국에 침묵하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나요.


제 침묵의 이유는, 부끄럽지만 한 통의 고소장이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떤 분한테 고소를 당한 거죠.

아내는 제가 정치적인 글을 쓰는 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여기다 글을 계속 쓰기 위해서는 아내를 설득해야 했고,

그 조건이 "고소라도 당하면 그만 쓰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제가 그만 고소를 당합니다.

많이 놀랐죠.

글을 쓸 때 고소당할 만한 표현은 하지 않으려 노력했거든요.

고소당한 글을 읽어봤지만, 이게 뭐 고소거리인가 의아했어요.

하지만 제가 아무리 조심해봤자, 제가 존경하는 그분을 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내와의 약속이 생각나서 경찰 분께 전화를 걸었죠.

"그분 전번을 가르쳐 달라. 빌어서 고소취하를 해보겠다"라고 부탁했습니다.

알아낸 전번으로 전화를 걸어 그럴 의도가 아니었고, 앞으로 착하게 살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분은 "큰틀에서 보자"고 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설명을 듣고나니 "너희 쪽 사람들은 날 그렇게 고소하는데 내가 널 왜 봐주겠느냐"는 뜻이더군요.

그로부터 며칠 후, 그분이 자신을 고소한 분한테 몇백만원을 물어주라는 판결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를 봐주는 건 물건너간 것 같아 경찰서에 갔고, 

1시간여 동안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게 2주 전의 일입니다.

그 사실을 아내에게 숨겨오다가, 오늘에서야 고백을 했습니다.

아내는 "그것 봐. 내가 글쓰지 말라고 했지!"라고 하는 대신

저를 위로해 줬습니다.

제가 고소당한 글을 읽어보고 "이걸 가지고 고소를 하느냐"며 제 편을 들어 주기도 했지요.

막상 아내한테 고백을 하고, 또 흔쾌히 이해를 해주는 아내를 보니까

고소장 하나에 의기소침해 한달간 글을 못쓰고, 또 잘못했다고 빌기까지 한 제 자신이 부끄럽네요.

제 안위를 걱정해주신 여러분들께도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근황1. 제가 제 사인을 바꿨습니다. 지난 18년간 말 사인을 했는데, 편충으로 바꿨어요.

말 사인을 한 이유는 제가 쓴 한심한 책 <마태우스>를 내면서부터였어요.

'마태우스'니까 '말'을 그렸는데,

그 책이 망하고 나니까 "왜 말을 그리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렵더군요. 

앞으로 제 사인은 편충입니다.



근황2. 제가 12월 말부터 경향신문에 다시 칼럼을 쓰기로 했습니다.

제가 경향에 글을 처음 쓴 게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 2년차 말이었거든요.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뒤 칼럼을 그만뒀다가 2년차 말에 다시 시작을 하는 건데요,

제 원래 생각은 "3년차가 되면 글을 좀 더 자유롭게 써도 되겠지"였는데요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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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izetheday 2014.12.19 13:00

    그 고소인 별명이 ATM이라죠?
    다른 데서 고소 당해 내는 벌금을 샘한테서 벌어내려나 보네요.

    시절이 너무 하수상하고 우울하고 화나는 뉴스만 나오니
    힐링을 위해 여기 계속 들어와보는데
    글이 없어 궁금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니...

    근데 그 인간 이 정권에서 한 자리 하고 싶어하는 건
    다 아는 사실 아닌가요?

    이기실 겁니다. 홧팅!

    • 기생충서민 2014.12.30 10:18 신고

      오옷 님이 보통 분이 아닌 건 알았지만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안그래도 그분이 다른 데서 600만원 선고 받더니 저한테 이러더군요. 그거 대신 내주면 고소 취하해준다고. 아유, 정말 웃기지도 않더라고요. 절 무슨 바보로 아는지....!

  • 세눈박이욘 2014.12.19 16:18

    오늘,

    통진당이 해산 결정을 받았네요.

    공교롭일도 2년전 대선일이였고

    쥐박이 생일인 오늘.

    2014.12.19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사망일을 애도합니다.

  • CJK 2014.12.19 16:27

    꿀꿀한 날에 꿀꿀한 글이네요 ㅠ.ㅠ
    모처럼 쓰신 글이 이런 내용이라니,
    에궁, 뭐라고 위로를 드려야할지......

    그래도 해는 또 다시 뜬다!!
    힘내시구요, 새해에 축복을!!^^^

    • 기생충서민 2014.12.30 10:16 신고

      네, 글 내용으로 봐서 고소할 거리는 안되지 않나 싶은데, 아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한동안 글을 못썼어요. 힘 낼게요!

  • 기생충무서워 2014.12.21 22:27

    샘. 힘내세요.
    진보가 지금 침묵한다면 세월이 흐른뒤 부끄러울듯 합니다.
    제가 부친의 교육열에 의해 시골에서 읍내로 이사와 중학생이 되었는데 그해 국회의원 유세를 학교운동장에서 했습니다.
    시골소녀 궁금해서 구경 갔는데.
    인간들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를 찍어주시면 잘살게 해드리겠습니다. "
    제가 눈물을 흩뿌리며 주먹을 불끈했다는.

    난 인간의 삶은 빵을 나눠 먹는데 있다고 생각함. 샘 화팅.

  • 내영혼의슬픈눈 2014.12.22 10:21

    흠... 그간 그런일이?
    에효~~ 한숨이 아주 깊게 나옵니다.
    쌤 글을 사랑하는 한사람으로
    혹 쌤의 글을 빼앗기게 될가 염려됩니다.
    경향칼럼도 잘 읽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yjlee 2014.12.23 16:27

    글이 보이지 않아서 궁금했습니다. 이유가 있었군요. 늘 건강하시고 자주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 han,j.y 2014.12.24 15:50

    그런일이 있으셨군요 공백이 좀 길다 싶었는데.. 마무리 잘되시구요? 내년에도 기생충교수님의 날카로운 풍자글 기대해봅니다.감솨...

  • han,j.y 2014.12.24 15:50

    그런일이 있으셨군요 공백이 좀 길다 싶었는데.. 마무리 잘되시구요? 내년에도 기생충교수님의 날카로운 풍자글 기대해봅니다.감솨...

  • 구름과나무 2014.12.25 23:47

    에구~ 그런일이...
    찌질한 사람들 신경 쓰지 마시고
    교수님 힘내세요!!!

  • 밑에 머리 자른 사진 보고 2014.12.26 03:24

    정말..... 못생기셨네요... ㅠㅠ 밑에 머리자른 사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정도일줄이야........ 그래도 글은 계속 써주세요. 힘내시구요...

  • 바퀴벌 2014.12.26 09:48

    힘내십시오. 늘 위로를 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기생충서민 2014.12.30 10:14 신고

      네 바퀴벌님, 아내가 글쓰기 좋아하는 남편을 얻었으니 좀 강단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해서 저도 절필을 할까말까 고민하고 그러네요.

  • 최정심 2014.12.26 13:32

    입이 있으되 말을 못하고 눈이 있으되 보지말아야 하는 슬픈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저 쓴 웃음만 나오네요.
    그래도 서로 의지하고 잘 버티자구요. 누구좋으라고 죽을순 없으니까요.

  • 코알라 2014.12.26 13:37

    조용히 입다물고 사는 저같은 사람은 선생님 글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와 비슷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응원합니다.

  • 魔時間도사 2014.12.26 14:25

    한동안 뜸 하셔서 정말 바쁘시구나 생각 했는데 참 어이없는일 당하셨네요.
    뭐 살다보면 X도 밟고 X개에게도 물리고 ....... 뭐 그런게 인생이겠지요.
    아자! 아자! 힘내시구요 .
    새해에는 서교수님의 더욱더 시원한 글 기대 합니다.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권장덕 2014.12.28 01:54

    이런일이 있었으면 나에게 얘기 좀 하지

    • 기생충서민 2014.12.30 10:11 신고

      오모나 장덕아. 근데 사실... 고소가 무서운 게 아니라 그것 땜시 아내가 스트레스 받고 우울증 빠지는 게 무서웠다..ㅠㅠ 워낙 심약하거든.

  • 돈키호테 2014.12.29 19:42

    존경하는 서민 교수님
    건강검진 하고나니 제 간에 기생충인 Fasciola hepatica가 살고있답니다.
    그런데 약은 모른다고 하십니다. 약국가서 구충제 사서 먹고 있읍니다.
    이놈은 어떤 놈이고 어떻게 해야 없앨수 있을까요?

    • 기생충서민 2014.12.30 10:11 신고

      간질이라고요... 원래 triclabendazole이 듣는다고 하는데,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프라지콴텔을 드시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논문에 나와 있으니, 그걸 드시는 게 어떨지요. . 의사처방 있어야 하니 의사와 상의해서 드셔야겠지만요

    • 돈키호테 2014.12.31 09:19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 이현숙 2014.12.30 07:26

    교수님! 힘내세요..힘없는 저같은 사람은 힘내시라는 댓글 한줄밖에 없네요..

  • 바나나 2015.01.01 03:00

    제 남편도 블로그에 조중동 어느 기자의 기사에 대한 비판의 글을 썼다가 기자로 부터 고소당한 경험이 있어요... 고소장을 받았을때 심약한 저도 이게 뭔가 싶었지만 정의를 위해 싸우라고 응원해줬습니당.. (결국 고소취하, 만나서 얘기좀 하자고 했다는데 만나지 않음)
    교수님 글 넘 좋아요~ 그런 일로 쉬지 말아주셔요 ㅎㅎ

  • 차차 2015.01.31 11:28

    교수님 뵙고 싶었는데 블로그에 글쓰고 계셨네여 진작에 찾아뵐걸 그랬어요 티비에 나오셔서 기생충 얘기해주실때 너무 재미있게 봤는데 ..언제 나레이션도 한번 하셨죠??정말 재미있었어요 .교수님 존경합니다^^

  • 나무 2015.03.19 10:48

    변 밟으셨군요... 이런 변을 봤나! 병자호란급 변입니다.

    교수님은 요즘말로, "뇌가 참 매력적"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