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의 아내



윤도현님이 K모 가수를 가리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걔가 무슨 386이냐.”

386은 시대의 불의에 맞서 저항을 했던 사람이어야지, 30대라고 해서 다 386이란 호칭을 붙여서는 안된다는 의미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칼럼니스트란 호칭은 우리 사회에 소금이 되는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 분에게나 적합한 말이지, 신문에 몇 번 글을 써봤다고 해서 다 칼럼니스트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저처럼 비아냥거림으로 가득찬 글만 쓰는 이가 칼럼니스트일 수는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제목을 단 건, 아내를 높이려면 저도 좀 높아져야겠단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이 점, 양해 바랍니다.


2009년 11월, 경향신문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칼럼을 써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4년 전 한겨레에 글을 쓰다가 역량부족으로 그만둔 쓰라린 기억이 있기에 선뜻 수락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쓰겠다는 말을 한 건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옛날 분들이 다 그렇듯 어머니는 제가 신문에 나는 걸 그렇게 좋아하십니다. 제가 조회수가 훨씬 높은 네이버 ‘오늘의 과학’의 고정 필진이 되었을 땐 하나도 좋아하지 않으셨지요. 한겨레에 못난 글을 쓰던 시절, 어머니는 제 글이 나오는 날이면 신문 가판대로 달려가 아홉부씩 신문을 사오셨습니다 (왜 10부가 아니라 9부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홉수 때문일까요?). 그리고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우리 아들이 쓴 거야!”라고 자랑을 하셨습니다. 엄마 친구분들 중엔 보수 쪽에 기울어진 분들이 대부분인데 말입니다. 제가 한겨레를 그만뒀을 때 어머니는 정말 서운해하셨습니다. 제가 경향에 글을 쓰기로 결정한 건 “네가 정 힘들면 할 수 없지”라고 말하던 어머니의 쓸쓸한 표정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가판대에서 신문 사기가 훨씬 힘들어진 요즘도 어머니는 여러 군데 가판대를 돌면서 신문 아홉부를 사십니다. 어머니한테 효도를 거의 못하고 사는 저로서는 신문에 글을 쓰는 게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몇 안 되는 방법입니다.


지금이 2011년 6월이니 경향에 글을 쓴 지도 벌써 1년 반이 지났네요. 신문 칼럼을 쓰기로 한 건 어머니 때문이지만, 1년을 훌쩍 넘겨가며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내 덕분입니다. 아내는 제 글의 첫 번째 독자이자 냉정한 독자입니다. 아내는 절대 빈말을 하지 않습니다. 저를 격려하기 위해 글이 좋다는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게 뭐야. 너무 억지잖아!”라고 하거나 “재미없는데?”라며 제 가슴에 비수를 꽂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전 아내가 “재밌어.”라고 한 마디 해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제일 좋은 건 제 스스로 만족하는 글이지만, 서른 번이 넘는 글을 경향에 보내면서 제 마음에 쏙 들었던 글은 몇 번 없습니다. 좋은 아이템이다 싶다가도 막상 글로 옮기고 나면 이상한 글이 되기 십상입니까요. 그래서 전 일단 글을 쓰고 나면 아내에게 보인 뒤 눈치를 살핍니다. 아내가 좋다고 하면 그제야 마음을 놓고 경향에 보내지요. 편집자 역할까지 해야 하는지라 귀찮을 법도 하지만, 아내는 한 번도 첫 독자의 의무를 거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가끔은 이런 말로 절 격려하기도 합니다.

“매번 잘 쓸 수 있니? 3할만 치면 훌륭한 칼럼니스트야.”

생각해보니 제가 한겨레에 칼럼을 쓰던 시절엔 지금의 아내가 없었네요.


경제학자 장하준 선생은 자신의 첫 책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불규칙하게 발작적으로 진행되는 나의 집필 버릇과 집안일에 대한 소홀함을 기꺼이 감내해 준 것은 물론 끊임없이 사랑을 보내 주어 큰 힘이 되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제게 ‘칼럼니스트’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게 되는 날이 온다면 집 안에 마련한 단상 위에서 아내에게 기꺼이 감사의 표시를 할 생각입니다. “여보, 내가 오늘의 자리에 오른 건 8할이 당신 덕분이야.”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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