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갑자기 사라진 개그맨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행사 같은 거 뛰겠지”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는데, 그게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3년 전 방영된 <인간극장>의 주인공은 김진. 우리가 아는 그 김진이 아닌, 예전에 왕비호(윤형빈)와 함께 ‘마징가송’이란 난해한 개그를 선보였던 무명 개그맨 김진 말이다. 공채 개그맨이란 기쁨은 사라진 지 오래고, 선배의 가게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끼니를 때운다. 개그의 꿈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 무대에 서지 못하다보니 감각이 떨어졌다는 그의 말을 듣다가 가슴이 저렸던 기억이 난다.

공중파의 개그 프로그램이 축소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KBS의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는 아직도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승승장구하지만, 그와 경쟁해야 할 다른 채널의 개그프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2010년 최우수상을 받은 김병만이 “SBS, MBC 사장님들, 코미디에 투자해 주세요”라고 했겠는가?
개그프로가 줄어들어 서민들이 웃을 기회가 없어진 것도 안타깝지만, 설 자리가 없어진 개그맨들이 김진이 그런 것처럼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서야 하는 것도 안쓰러운 일이다. 행사라는 것도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라 얼굴을 알려야만 기회가 주어지니까.

tvN의 <코미디 빅리그>(이하 코빅)는 이런 개그맨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 준다. 과거 방송 3사에서 잘 나가던 개그맨들이 팀을 이뤄 개그로 자웅을 겨루는데, 매 라운드마다 순위에 따라 승점을 부여, 마지막 라운드까지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팀이 우승을 차지한다. 시즌 1에서는 1등 상금이 1억원이었지만, 얼마 전 시작된 시즌2는 총 상금이 2억5000만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개그맨들에게 중요한 건 상금액수가 아닐 터, 그들은 그저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기생충학자는 기생충을 발견할 때 기쁜 것처럼, 개그맨들 역시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들 앞에 서야 행복한 법이니 말이다.

경향신문DB


문제는 이게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 시즌1에서는 하위 4팀에게 재방송에서 편집되는 벌칙을 내렸고, 시즌2에선 아예 꼴찌팀에게 상당 기간 출연할 기회를 박탈한다. 이미 공중파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코빅은 자신들이 재기할 수 있는 마지막 발판인 셈이다. ‘갈갈이’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박준형은 자신이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더 이상 갈 방송국이 없으니까.”
코빅 첫 회에서 꼴등을 한 어느 팀은 자신의 순위가 발표되자 요란한 세리머니를 해대며 꼴찌를 희화화했다. 하지만 그런 여유는 오래 가지 않았다. 회가 갈수록 개그맨들은 순위에 민감해졌고, 순위 발표 땐 기도까지 해가며 자기 팀이 탈락되지 않기를 빌었다. 늘 꼴찌만 도맡아 하던 이국주는 코빅 5회 때 자기 팀이 처음으로 2등을 하자 눈물을 줄줄 흘렸다.

사정이 이러니 개그맨들은 매 라운드마다 웃기기 위해 자신의 개그생명을 건다. 당연히 프로 자체의 재미는 어마어마해, 코빅을 보고 난 이후 개콘이 시시해진 건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다.
프로를 보면서 낄낄거리긴 하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웃길 수만 있다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개그맨 윤택은 보디 페인팅만 한 채 무대에 올라왔고, 뚱뚱한 개그우먼 이국주는 자기 몸을, 안예쁜 개그맨 정주리는 자기 얼굴을 비하한다. 가끔씩 ‘저렇게까지 웃겨야 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이 광경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축소판일 수도 있다. 능력이 있는 자에겐 부와 찬사가 쏟아지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에겐 가차 없는 칼날이 날아오는 게 바로 우리 사회가 아니던가? 코빅의 개그맨들과는 달리 우리에겐 이 사회를 바꿀 힘이 있다. 두 번의 큰 선거가 있는 2012년은 우리가 그 힘을 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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