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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은 기생충

톡소 생애 최고의 순간

 

오른쪽 눈이 조금 이상한 걸 알 수 있다.

EBS 방송팀이 유기묘 보호소에서 데려온 고양이는 한눈에 봐도 아픈 것 같았다.

계속 기침을 했고, 걸핏하면 한쪽 눈을 찡그렸다.

병원에 갔더니 폐렴은 아니라면서도 먹는 약과 안약을 지어줬다.

촬영은 다음으로 미뤄졌고,

그날 촬영을 하고 나서 산에 방생될 뻔했던 그 녀석은

결국 내 실험실 고양이로 길러지게 됐다

(톡소포자충의 이미지를 촬영한다고 데려온 거라 이름이 톡소가 됐다).

 

부지런히 약을 먹인 덕분에 톡소의 상태는 조금 나아졌지만,

톡소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내가 퇴근하고 난 밤 7시 이후부터 다음날 9시까지, 무려 14시간을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있어야 했으니까.

성격도 좋고 사람을 유난히 따르는 톡소는 내가 오면 몸을 비비며 반가움을 표시했고,

내가 퇴근할 때면 야옹거리며 서운해했다.

혼자 있을 때도 복도에 누가 접근할 때마다 울어대는 통에

내 연구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톡소의 존재를 알아버렸지만,

그거야 실험할 고양이다라고 둘러대면 됐으니 별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상태가 조금 좋아져 목욕을 시키려고 미용실에 데려갔을 때 발견됐다.

톡소가 중성화수술을 하고 실밥을 아직 안풀었더라고요. 그보다 피부가 많이 안좋은 게, 병원에 데려가봐야겠어요.”

 

 

내 방으로 온 톡소. 프린터를 보며 신기해하고 있다

놀라서 다시 그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는 오래지 않아 곰팡이가 심하다,고 진단해 줬다.

몸에 포자 상태로 갖고 있던 곰팡이가 좀 따뜻한 곳으로 오니 활짝 피어난 게 분명했다.

난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일 생각이었지만, 아내는 단호했다.

이전에 예삐와 뽀삐(내 두 딸들)가 다니던 서울의 동물병원에 톡소를 입원시키자는 것.

그때부터 톡소는 다시 창살에 갇힌 채 한달이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제법 정이 들었기에 톡소가 보고싶었던 적이 많았고,

장난을 좋아하는 그 녀석이 철장 안에서 얼마나 심심할지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톡소가 많이 좋아졌어요. 다음 주면 데리러 와도 돼요.”

100만원에 가까운 병원비는 헛되지 않았는지 톡소는 완전히 새 인물로 탈바꿈했다.

털이 빠졌다가 다시 나서 윤기가 흘렀고, 한쪽 눈을 찡그리던 것도 완전히 없어진,

몸도 커지고 잘생겨진 고양이 한 마리가 내 품에 안겨 있었다.

그런 톡소를 다시 실험실에 방치하고 싶지 않았기에 우리집에 톡소를 데려갔는데,

그 녀석이 우리 강아지를 공격하는 걸 보니 눈이라도 할퀼까 걱정이 되어

내 방에 가둬놓고 길러야 했다.

 

                                 눈이 다 나아서 잘생긴 고양이가 된 톡소

  

2주 가까이 있는 동안 내 방은 모래와 털, 고양이가 찢어놓는 종이조각으로 엉망이 됐지만,

난 톡소 덕분에 무척이나 즐거웠고,

고양이를 처음 키우게 된 아내 역시 걸핏하면 톡소를 보러 와 재롱을 감상했다.

사람을 그렇게 따르고 장난도 잘 치는 고양이인데,

내가 늘 그 녀석과 같이 있지 못하는 게 미안했다.

실험실에 있을 때완 달리 녀석은 내가 퇴근해 현관문을 열면 반가워서 야옹거렸고,

출근을 할 때면 슬프게 야옹거렸다.

그 동안 아내는고양이 아홉 마리를 기르는 지인의 집에 톡소를 맡기기로 합의를 했고,

지난 일요일 아침, 고척동에 있는 그 집으로 톡소를 데리고 갔다.

내가 전날 컴퓨터에 끄적거린 글은 이런 내용이었다.

[...친구도 많고, 환경도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니, 톡소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고양이를 제법 만났지만 톡소만큼 성격 좋은 고양이는 처음 만난다.

사람을 잘 따랐던만큼 그 집에서 만날 다른 고양이들한테도 환영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고양이 세계가 어떤지는 모르니 쉽게 짐작할 수는 없으리라.

만일 톡소가 적응을 못한다면 일단 우리집에 다시 데리고 오는 수밖에 없을텐데,

어쩌면 난, 그걸 더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걱정은 기우였다.

톡소는 그 2층집에 풀어놓자마자 야바위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와 죽이 맞아버렸고,

그 녀석과 노느라 우리 쪽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그 후 시시때때로 톡소의 소식이 들려왔는데 대충 다 좋은 것들뿐이었다.

톡소가 야바위랑 너무 잘놀아요!”

톡소가 성격이 좋아서 그런지 고양이들과 잘 어울려요.”

그랬다. 사람이 아무리 잘해줘 봤자 고양이는 같은 고양이를 좋아하기 마련,

생후 1년 동안 온갖 풍파를 다 격은 그 녀석에게는

친구 아홉과 같이 있는, 그리고 햇볕도 마음껏 쬘 수 있는 지금이 봄날이었던 거다.

내 품에 들어온 고양이를 다른 곳으로 보낸다는 미안함은 진즉 없어졌고,

지금 아내와 난 한 생명을 구원했다는 생각에 뿌듯해하고 있다.

“톡소가 잘 지내니까 톡소 입원비가 하나도 안아까워라는 말에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당연하지. 그 입원비는 내가 냈으니까.”

참, 그 집에서 톡소는 이름이 '라이온'으로 바뀌었단다.

잘 지내렴, 톡소, 아니 라이온아.

 

 

 

  • grace 2013.03.14 01:41

    고양이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글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감사를 드려요 우리들 각자에게 맡겨진 동물에게 님과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끝까지 책임을 가지고 돌봐야할것 같아요 아름다운 글에 감동이예요..~♥

    • 서민 2013.03.14 14:41

      동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애완동물을 끝까지 책임질 여건이 되는 분만 입양을 했으면 참 좋겠다 싶어요. 근데 요즘은 너무 쉽게 키우고, 너무 쉽게 버리죠

  • 이현애 2013.03.14 11:40

    조금 전에 아이들과 남편하고 말다툼하다 잘려고 올라왔거든요. 아 참 집 안에서 반려동물 키우는 일때문에요. 그런데 교수님 이 글 읽고 많이 반성하고 있읍니다.

    • 서민 2013.03.14 14:40

      이현애님, 안녕하세요 반려동물이 갈등의 원인이 되나봐요. 그게 진짜 괴로운 일인데, 어떻게 잘 해결됐으면 좋겠네요. 동물도 한번 버려지고 나면 삶의 질이 굉장히 떨어지더라고요...

  • 세눈박이욘 2013.03.14 13:21

    저도 동물을 무지 좋아라해서 교수님의 이번 글에 더 공감이 갑니다.
    아파트에서 제가 키우던 '땅꼬'는 혼자 계신 장모님의 마당 있는 집에서 신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좋은 친구와 좋은 환경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교수님의 글이군요^^^

    • 서민 2013.03.14 14:39

      아 동물 좋아하시는군요! 하기야, 이념이 왼쪽일수록 생명을 소중히 하더라고요. 좋은 환경이 정말 중요하죠. 울나라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 세눈박이욘 2013.03.14 15:43

      교수님께서 교육자시라 저보다 더 잘 아실 터이지만 우리나라 아이들은 갈수록 더 학원과 시험으로 내몰리고 있는 듯합니다.
      집중이수제,story telling 수업제도,국가영어능력시험(NEAT)등 MB정부에서 싸질러 놓은 교육정책에 적응하느라 학부모님들과 학생들 모두 머리 아파 죽으려 하십니다.
      특히,맞벌이 가정 아이들은 전업주부 가정 자녀들에 비해 학습적으로 더 뒤쳐질 수 밖에 없는 시스템으로고착화되는 제도들(학업성취도라는 것이 전업주부 자녀에게 더 높게 나온다고 보는 시각이 교육학자들의 다수설로 압니다)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 씁쓸할 뿐입니다.

    • 서민 2013.03.15 22:40

      그러게 말입니다. 저렇게 공부를 시켜서 뭘 하려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자유롭게 뛰어놀 나이에.... 그래서 제가 애를 안낳는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개 기르려고 안낳는 거지만요..)

  • 이효석 2013.03.14 15:00

    톡소가 라이온이 되어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기쁩니다.
    사모님께서 "입원비는 내가 냈으니까"라고 하신데서 빵 터졌습니다.
    어쩜 우리 아내와 비슷한 말을 할까 하고요.
    이제 진정 봄이 시작되는것 같습니다. 교수님도 라이온이된 톡소도 즐겁고 행복한 봄 되시길~

    • 서민 2013.03.15 22:41

      라이온이된 톡소라니 너무 웃기죠?
      이효석님도 즐거운 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비록 PGH가 푸른집에 있지만요

  • 열혈팬 2013.03.14 17:45

    감동입니다. 힘겨운 겨울을 버텨낸 봄날 따뜻한 영화 한편 본것 같아요^^

    • 세눈박이욘 2013.03.14 21:29

      열혈팬님의 두 줄 평이 확 가슴에 와닿습니다^^^
      아울러 교수님의 배 쪽에 매달린 톡소와 교수님 배,자판 치시는 교수님 손등과 톡소 등등 사진이 주는 재미도 쏠쏠한 이번 글이네요.

    • 서민 2013.03.15 22:41

      글게요 가슴에 확 와닿네요 그래서 그런지 저도 아까 쿡으로 다른 나라에서,란 영화를 봤어요. 이자벨 위페르가 매우 미녀로 나오는데 1953년생이라 허걱 했다는...

  • 이현애 2013.03.15 07:30

    애들과 남편이 원해서 강아지를 입양했는데 딸 셋 키우는거보다 어려운거 같아요.

    • 서민 2013.03.15 22:42

      앗 그런가요. 적어도 울나라에선 애들 기르는 것보단 고양이 기르기가 더 낫지 않나요 학원은 최소한 안보내도 되잖아요

  • 삐따기 2013.03.15 10:56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네요..
    참 동물들은 사랑을 주는 만틈 기쁨을 주는 듯 합니다.
    비록 같은 동물이 더 좋을 망정 사람에게 고통이나 피해를 끼치지는 않죠..
    요즘 세상은 참 이런 동물만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봄도 오는 데.. 따듯한 세상도 왔으면 합니다.

    • 서민 2013.03.15 22:42

      버려진 동물들이 제일 힘든 계절이 겨울인데, 이제 봄이 오고 있네요. 그네들 삶도 좀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박찬미 2013.03.15 14:07

    전 강아지가 더 좋은데 요즘은 고양이의 매력도 보이더라구요~
    누워있는 냥이들 너무 편안해 보이네요 ^^

    • 서민 2013.03.15 22:43

      저도 물론 고양이보단 개죠
      그래도 고양이가 재롱은 훨씬 더 잘 피우더이다

  • 이준서 2013.03.15 16:18

    저는 마당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좋아합니다^^
    요즘 같이 서울에 마당이 없으니 키우기가 힘들죠.

    얼마 전 사돈 댁 아파트를 잠깐 갈 일이 있었는데 애완견 2마리가 있더군요.
    어찌나 재롱을 떠는지~
    근데 키울 자신은 없습니다^^

    • 서민 2013.03.15 22:44

      안녕하세요 이준서님
      자신 없는데 억지로 키우심 절대 안되죠...
      충분히 자신있다고 생각할 때 키우시고, 가족 중 한명이라도 반대를 안해야겠죠... 즐거운 주말 되세요

  • 김미미 2013.03.17 00:54

    몇년 전,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한번에 세 마리의 남매 고양이를 받아줄 새 주인을 찾아 사방에 연통을 넣던 일이 떠오르는군요. 다행히 새 보금자리로 입양 하던 날, 세간살이와 사료박스를 건네주며 눈물짓던 일이 어제같습니다. 그리움에 못 이겨 몇 달 후 다시 찾은 나의 마하, 반야, 밀다는 당시 동계올림픽에 빠져있던 새 주인에 의해 태범, 연아, 마오로 바뀌어 꼬리를 슬쩍 내 다리에 문지르고 돌아서던 모습이라니.. 톡소의 모습이 너무도 마하와 닮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몇 자 적습니다.

    • 기생충서민 2013.03.18 19:49 신고

      이름이 태범, 연아, 마오로 바뀌었다구요 ^^ 연아까진 그렇다쳐도 마오는 좀..... 이상화도 있는데 마오라니요. 흠흠. 마하도 참 잘생긴 고양이였겠네요. 버리지 않고 주인을 찾아주시다니, 미미님 복받으실 겁니다

  • 촌철살인 2013.05.01 22:10

    MB느님 관련 글 보다가 마음이 정화가 되네요.ㅎㅎㅎ

    정말 반려동물 기를 자격 없는 사람들은 아예 기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2013.05.18 17:26

    참 마음이 이쁜 분이신것 같아요... :)

  • 써니 2013.07.03 13:20

    건강해진 톡소 너무 예쁘네요
    살도 올라 통통해지고....
    제가 고양이를 기르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 이 글에 애착이 가네요ㅎㅎ

  • alice 2013.07.03 17:55

    톡소가 좋은 친구들하고 잘 지내서 다행이네요^^
    저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요, 그래서 더 마음이 따듯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