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패망한 일본은 전범국이라는 이유로 헌법에 다음 내용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무력의 행사를 포기하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이게 바로 헌법 9조로, 일본 헌법이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1954년 자위대가 만들어졌지만, 선제공격을 허용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해외파견은 안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일본 보수세력은 이 평화헌법을 없애려고 끈질기게 노력했고,
얼마 전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해 “일본이 공격당했을 때뿐만 아니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가 무력 공격당했을 때”도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아사히신문같은 좌파언론은 "헌법 9조를 무너뜨리는 해석개헌"이라며 비판했고,
일본 곳곳에서 좌파들로 이루어진 시위대가 규탄대회를 갖고 있지만,
일본 보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헌법 9조를 아예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보수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다.
80년대에는 소련을 빌미로 우주까지 넘나들 수 있는 전력을 갖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소련이 러시아로 찌그러진 마당에는 아프카니스탄이나 이라크같이 전력상 상대가 안되는 나라들을 상대로 걸핏하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아프칸 침공은 9.11 테러의 주범 빈 라덴을 잡으러 간 거라고 쳐도,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거짓말을 해가며 이라크를 침공한 건,
그냥 그네들이 “전쟁을 참 사랑하는구나!”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노암 촘스키같은 좌파 인사들은 그래서 미국 보수를 맹렬히 공격하지만,
미국 보수는 아직도 배가 고픈 것 같다.
새로운 적을 찾아내려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 보수는 정말 평화를 사랑한다.
그 증거가 바로 전시작전권 (이하 전작권).
국가의 존재 이유가 바로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할 때,
6.25 때 미국에 넘긴 전작권을 60년이 지나도록 찾아오지 않고 있는 건 매우 기이한 일이다.
더 신기한 건 전작권을 되찾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바로 보수세력이라는 점.
일례로 좌파였던 노무현 정부는 2012년 전작권을 찾아오기로 미국과 약속하는데,
보수의 기린아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을 핑계로 전작권 회수를 미룬다.
이렇게 해서 2015년으로 미뤄졌던 전작권 회수는
보수 중의 보수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또 다시 미뤄졌다.
신기한 것은 보수단체들이 총 출동해 전작권 연기를 부르짖었다는 것.
우리와 비슷한 나라들이 죄다 미국에게 전작권을 맡겨놓은 것도 아니고,
미국이 안주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 보수는 전작권을 안가지려고 할까?
이웃 일본은 전쟁을 할 권리를 못찾아서 안달인데 말이다.
그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보수가 유독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아버지가 새총을 사줬다고 가정해 보자.
그 경우 평소 미워했던 사람을 찾아가 협박하고 싶기도 하고, 자기를 거절했던 여자의 뒤통수를 쏘고 싶기도 할 것이다.
무기가 있으면 쓰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본성 중 하나이니,
아예 안갖는 게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우리 보수의 신념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명박 정부 때 천안함이 침몰한 것도 모자라 연평도가 포격당하는 전대미문의 일이 일어났지만,
우리 정부는 북측으로부터 한 마디 사과도 듣지 못한 채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미시마 유키오였다면 할복을 해도 여러번 했을 일인데,
우리 보수세력은 형식상 규탄대회만 몇 번 하고 말았다.
‘형식상’이라고 한 건 규탄대회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나이든 할아버지고,
그래서 그런지 시위에 마땅히 따라야 할 경찰병력도 통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 보수는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미는 성경구절에 충실한 나머지
북한이 아무리 우리나라를 유린해도 별로 개의치 않으며,
다만 6.25를 겪은 할아버지들만 관절염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와 형식적인 시위를 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정부가 북한에 강경한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북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지만 남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도 만들어 달라”고 북한 대표단한테 애걸하기도 했는데,
이쯤되면 우리나라의 보수의 평화사랑은 정말 유별나다.
좌파들은 깨달아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살았다면, 전쟁반대 시위를 하느라 얼마나 바빴겠는가?
이 더운 일본 좌파처럼 거리로 나가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는 것,
이게 다 보수의 평화사랑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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