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의 세 가지 경우

* 너무 오래 업데를 안해서 죄송합니다. 바빠서 그런 게 아니라 글이 좀 안되더라구요
3타수 1안타를 기록한 뒤 3할대 타율을 유지하려고 남은 경기에 빠져 버리는 타자처럼,
저도 어줍잖은 글을 써서 어렵게 일군 인기를-그런 게 있다면 말입니다-까먹을까봐 걱정이 돼서 글을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하구요, 앞으로는 3할 타율보다는 전경기 출장을 목표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꾸벅

-----------------------------------------
 



2010년 7월, 김길태가 항소했을 때 모두 놀라 자빠졌다. 김길태는 부산의 한 가정집에서 여중생을 납치. 성폭행. 살해한 뒤 물탱크 안에 시체를 유기한 파렴치범으로, 그 사건 이외에도 3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감금하는 등 숱한 범죄를 저지른 바 있다. 재판부가 “어린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한 점, 잘못을 전혀 반성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사형을 선고한 건 지극히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김길태는 정신질환 등과 더불어 무죄라는 취지로 항소를 한다. 사람들은 어이없어 했지만, 그가 반사회적 인격장애, 소위 사이코패스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가 자신의 죄가 죽을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결국 부산고법은 그의 범죄에 사회의 책임도 있다며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는데, 김길태의 항소는 “1심 판결에 대하여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당사자가 다시 재판을 청구하는 것”이라는 항소의 정의에 들어맞는 거였다. 김길태와 비교하긴 좀 그렇지만, 대부분의 항소는 이런 취지에서 이루어지며, 의원직 박탈에 해당하는 벌금형을 받은 국회의원들의 항소도 여기에 속한다.




전여옥 의원은 <일본은 없다>라는 책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그가 국회의원이 된 것도 다 그 덕분인데, 알고 보니 그 책은 재일 르포작가 유재순 씨의 원고를 베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얘기가 기사화되자 전씨는 표절의혹을 보도한 오마이뉴스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2007년 7월 1심 재판부는 그 책이 표절이 맞다면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고 만다.
전씨는 “편파적인 재판부의 판결에 결코 승복할 수 없다.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며 항소한다. 사실 그 책이 표절이라는 건 <일본은 없다> 126쪽에 나오는 에피소드만으로도 입증이 되고, 전씨 스스로도 자기가 베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당사자”에 속하진 않을 것 같다. 이 경우 전씨의 항소는 시간을 끌어 자신의 쪽팔림을 면해 보려는 수단일 뿐, 진실 추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쪽에서 서너 달씩 4~5번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재판부에서 화가 나서 강제판결을 내리겠다고 하면 그제야 엉뚱한 증인을 내세워서 또 연기를 했다. 그런 식으로 3년을 끌었다.”는 유재순 씨의 증언을 들어보면 전씨의 항소이유가 짐작될 거다.
전씨에게는 불행하게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너무도 명백한 증거가 없던 게 되지는 않기에, 2010년 1월의 항소심도 똑같은 판결을 내렸는데, 전씨는 또다시 대법원에 상고를 함으로써 진정한 시간끌기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2011년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 14부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모씨, 이모씨의 유족 등 8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고(故) 황씨와 이씨 등 2명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들이 백혈병에 걸린 게 작업장의 유해물질과 관계가 있음을 사실상 인정한 것.
삼성전자 직원 중 백혈병으로 사망한 예가 유독 많은 걸 보면 이번 판결이 충분히 납득이 가건만, 삼성 측에서는 “반도체 공장의 근무 환경에는 문제가 없다”며 항소할 뜻을 비쳤다. 혹자는 이 항소가 “추후 사망자들에게 보상해야 할 돈이 아까워서”라고 하지만, 수조원대의 순익을 남기는 삼성이 그리 쩨쩨한 그룹은 아닐 거다. 혹시 이 항소는 법원의 반란에 대한 삼성의 협박이 아닐까?
기회를 한 번 더 줄 테니 이번엔 잘 해보라는 그런 협박 말이다. 판사직을 평생 할 게 아니라면 삼성에게 미운 털이 박혀서 좋을 건 없다. 삼성에 있다 양심선언을 한 김용철 전 변호사가 그 뒤 어떻게 살았는지를 상기해 보시라. 그래서 난 이 항소가 가장 무섭다. 김길태보다 훨씬 더.

'전염병 권하는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연 경제 대통령일세  (1) 2011.07.12
조류 숭배와 대한민국  (10) 2011.06.30
항소의 세 가지 경우  (3) 2011.06.29
완전한 소통  (1) 2011.06.14
신개념 군주의 시대  (29) 2011.06.03
칼럼니스트의 아내  (24) 2011.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