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앉은 채로 이동할 수 있도록 바퀴를 단 의자.” 휠체어에 대한 네이버의 설명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게 어려운 나라이다. 길을 만들 때 장애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탓인데, 뉴스를 검색해보면 “휠체어장애인 배려 없는 여수박람회장”이라든지, 곳곳에 놓인 장애물 때문에 “수원 팔달구에서 불과 550m를 휠체어로 이동하는 데 48분이나 걸렸다”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계단은 그 장애물 중 으뜸이라 할 만하다. 특히 지하철역에 설치된 휠체어리프트는 ‘살인기계’로 불릴 만큼 악명을 떨쳤는다. 이게 문제가 되어 휠체어리프트는 엘리베이터로 바뀌었지만, 2년 전 대전 지하철역에선 한 장애인이 엘리베이터 통로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향신문DB)
장애물은 계단만이 아니었다. 서울대병원 인턴이던 홍순범씨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고자 휠체어를 타고 병원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길이 너무 가팔라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단다. 경비 아저씨의 도움으로 겨우 병원 밖에 나가긴 했지만, 곳곳에 있는 장애물 때문에 포기하고 돌아와야 했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건 자기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자신은 언제라도 걸을 수 있었으니 어찌어찌 넘길 수 있었지만, 자신이 진짜 장애인이었다면 그 시선을 받는 느낌이 어땠을지 생각해보게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런 시선의 원인은 남을 쳐다보는 게 예의가 아니란 걸 의외로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게 워낙 낯선 광경이어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장애인이 집 안에만 있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요즘은 전동휠체어가 많이 보급되고 있다. 2005년부터 정부는 장애인이 전동휠체어를 구입할 경우 최대 167만원을 지급하고 건강보험도 적용해 주고 있는데, 손으로 바퀴를 돌리는 것보단 배터리로 가니 훨씬 편할 것 같다. 하지만 유지 보수비가 많이 들고 곳곳에 산재된 턱 때문에 차도로 다녀야 하니 교통사고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전동휠체어라고 다를 바 없다. 아이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것도 불쾌할 수 있겠고, 얼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원이다. 그만 물어봐라”라고 써 붙이고 다녔다는 한 장애인의 얘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도 전동과 수동 모두에게 적용되는 불편함이다. 그러니 휠체어가 아무리 좋아봤자 자기 발로 걷는 것만 못한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휠체어를 선택하는 분들이 있어 화제다. 현 대통령의 처사촌인 김재홍씨가 그 예. 저축은행에서 4억원을 받고 실형을 선고받은 그는 얼마 전 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선택하는 게 휠체어라는 네이버의 말이 맞다면 김씨는 이에 준하는 질병을 앓고 있어야 하건만, 그가 밝힌 병명은 고혈압과 편두통이 고작이었다. 편두통은 머리가 아픈 병, 편두통으로 가끔 응급실을 가는 지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발작이 심하게 올 때가 아니면 걷는 데 지장이 없단다. 고혈압 역시 그로 인해 혈관이 터진 게 아니라면 굳이 휠체어를 탈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김씨는 왜 휠체어를 탔을까? 김씨의 말이다. “고령에 건강도 좋지 않은 만큼 양형에 고려해 달라.” 그랬다. 김씨는 그냥 아파 보이기 위해, 그래서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휠체어를 탄 거였다. 김씨 말고도 수많은 정치인과 기업총수가 비리로 조사를 받으러 갈 때마다 휠체어를 타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그러니 네이버 사전의 휠체어 설명엔 다음 말이 추가되어야 한다. “비리 혐의로 잡혀가게 생긴 고위 인사들이 동정심을 받기 위해 이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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