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에 살았던 5세 소년의 미라. 



유적지에서 기생충알을 찾는 일을 한다. “기생충이 없어지니까 먹고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건 아니다. 연구할 만큼의 기생충은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있고, 다른 선진국들도 나와 비슷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류의 연구를 전문용어로 고기생충학이라고 부르는데, 미국, 영국, 일본 등 잘사는 나라들이 고기생충학의 강자 노릇을 하고 있다.

사진: 프랑스 동굴에서 발견된 3만년 전의 회충알


유적에 있는 기생충알은 의외로 많은 걸 말해준다. “인류의 조상이 신대륙, 그러니까 아메리카로 넘어온 건 빙하기 때 베링해를 건너서 온 게 아니라 배를 타고 왔다”는 주장도 기생충의 흔적을 조사함으로써 얻어진 결론이니까. 옛날 회충알의 DNA 서열을 분석하면 우리나라의 기원이 어디였는지도 알 수 있을 테고.
이 연구가 결정적으로 좋은 점은 해외논문에 잘 실린다는 것. 예를 들어 2007년 미국 기생충학회지에 실린 논문은 양주에서 발견된 5세 아이의 미라로부터 회충알과 간흡충알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만일 현대인이었다면 논문감도 안되겠지만, 그게 미라라는 이유만으로 해외 학술지에 실린 거다.
논문 한편을 내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열심히 실험을 해대는 사람이 본다면, 미라 몸속의 대변을 뒤져서 뚝딱 논문 한 편을 쓰는 내가 얄미워 보일 수도 있겠다.

사진: 회충알이 발견되어 백제 시대 화장실임이 밝혀진 왕궁리 유물. 저기서 우리 조상들이 일을 보셨다.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문화재 보존에 관한 한 우리나라의 법제가 비교적 잘 되어 있다는 거였다.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어떤 목적이든 땅을 파다가 오래된 유물이 나오면 즉각 공사를 중단하고 문화재 관련 단체에 유적발굴을 맡겨야 한다.
기간은 시기나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2년 정도는 발굴을 한다. 더 대단한 건 그 기간 중 드는 발굴비용까지 건물주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 하려던 공사도 못하는데다 돈까지 내라니 이렇게 억울할 법이 있을까 싶고, 건설 쪽에 종사하는 내 친구는 “이런 악법이 지역발전을 막는다”고 불평하지만, 아무튼 이 법 때문에 수많은 문화재가 발굴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 법의 수혜자로, 작년에 1500년된 회충알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법 때문이다. 교회를 새로 지으려던 곳에서 백제 시대의 유물들이 나오는 바람에 2년째 발굴을 하던 중이었는데, 그 덕분에 백제 시대 화장실의 대략적인 구조를 추측할 수 있었다.


서울 강남의 한 지역에 나붙은 발굴반대 현수막. 주민들의 심정은 십분 이해가 간다. 


4대강 사업은 북한의 천리마운동에서 기원한 ‘속도전’으로 일관하고 있다. 작년 8월에는 목표를 10% 초과달성했다는 보도까지 나왔고, 연내엔 전체 공정의 60%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란다.
신기한 건 4대강 지역에서 문화재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반만년의 역사답게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오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광범위한 곳을 파헤쳤는데도 문화재 때문에 공사가 중단된 적이 없는 걸까? 혹시 문화재가 없는 곳만 골라서 공사를 하는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뉴스에 의하면 경북 의성 낙단보 공사현장에서 낙단보 마애부처가 훼손된 바 있고, 고고학 교수들은 “농경지에 준설토를 붓는 리모델링 사업 대상지 75000 m
2 가운데 제대로 문화재 조사가 이루어진 곳은 7%에 불과하다”는 자료를 냈다. 나머지 지역에서는 2년은커녕 “1일 현장확인”만 거친 뒤 땅을 팠다고 하니, 수많은 유물들이 사장되었으리라.

의성에서 발견된 낙단보 마애부처랍니다


얼마 전 신공항 대상지 후보로 거론되는 부산 가덕도를 다녀왔다.
신석기, 그러니까 8천년 전으로 추정되는 패총에서 무려 26구의 인골이 발견된 것. 거기서 기생충알을 찾는다면 대단한 업적이 될 것이기에 기대가 컸다. 아쉽게도 기생충알을 찾지 못하고 말았지만, 그렇게 많은 인골이 발굴된 건 처음 있는 일이라 고고학적으로 의미있는 발견이 될 것은 확실한 모양이다.
갑자기 검사도 해보지 못하고 떠내려 보낸 4대강의 수많은 유적지들이 생각난다. 그 안에는 얼마나 많은 기생충알이 있었을까?


사진: 가덕도 신석기 유적의 인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