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선생님한테 전화를 받았다.

환자한테서 길이 60센티 가량의 회충이 자꾸 나오는데,

회충약을 두 번이나 먹었지만 소용이 없다는 거다.

회충 또는 그 비슷한 기생충이라면 회충약에 아주 잘 들을 테니

그 환자가 말하는 벌레는 회충이 아니란 얘기다.

또한 회충은 길어봤자 30센티 정도가 고작,

60센티라면 이건 회충이 아니다.

아마도 우리가 촌충이라고 부르는 기생충에 감염된 게 아닌가 싶었다.

끈벌레라고도 불리는 촌충은 마디로 연결되어 길이가 3미터를 넘고,

어느 정도 길이가 되면 끝부분을 잘라서 변과 함께 밖으로 내보내니 말이다.

 
사진: 광절열두조충


환자를 만나서 얘기를 들었다.

작년 8월경 변을 보는데 항문 근처에 뭔가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더란다.

그래서 끄집어냈더니 마디가 있는 벌레였다나.

놀라서 회충약을 먹었지만 그로부터 두 달 뒤 또 그런 일이 있었고,

8개월간 총 4차례나 벌레 조각이 항문으로 나왔다고 했다.

역시 광절열두조충이구나 싶어 실물을 보여주니 비슷하다고 한다.

이틀 뒤 다시 만나서 약을 주고 4.5미터짜리 벌레를 꺼냈다.

이렇게 간단하게 끝날 수 있는데 8개월을 고생했다니 마음이 아팠다.





광절열두조충은 연어나 송어를 먹고 걸리는 기생충이다.

크기가 10미터까지 될 수 있지만,

그 크기에 비해 증상은 거의 없는 온순한 녀석이다.

하지만 그 녀석은 충체의 끝부분을 변과 함께 외계로 내보내며,

그 과정에서 발각이 된다.

광절열두조충에 걸린 43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배가 아프거나 괜히 피로하다는 답변을 한 이도 있었지만

증상이 아예 없거나 변을 볼 때 벌레의 조각을 발견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표 참조. abd. pain은 복통, passage of proglottid는 벌레 조각 발견, diarrhea는 설사다)



그럼 이 광절열두조충은 뭘 먹고 걸릴까?

교과서에는 연어회로 나와 있지만,

실제 우리나라 연어에서 광절열두조충이 발견된 적은 아직까지 없다.

연어가 비싸서 아무도 조사를 못한 탓인데,

일본에서 한 조사결과를 보면 연어의 30%가 광절열두조충의 새끼를 갖고 있다니

연어가 감염원의 하나인 건 맞는 것 같다.

아래 표는 걸리기 전에 뭘 먹었느냐고 물은 결과다.


모듬회가 제일 많고, 연어, 숭어, 농어, 송어 등을 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회를 자주 먹는 사람이라면 몇 달 전에 먹은 게 뭔지를 기억하는 게 쉽지 않고,

횟집에서 모듬회를 먹었다면 더더욱 어려워진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숭어나 농어는 광절열두조충의 감염원으로서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

이 환자에게 물었더니 벌레 조각이 나오기 석달쯤 전 “송어회를 자주 먹었다”고 한다.

송어는 연어와 사촌지간쯤 되는 물고기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붉은 살을 가진 그 쫄깃쫄깃한 회에 광절열두조충의 새끼가 들어 있다니 마음 아파할 사람도 많으리라.



조만간 환자분이 말한 그 횟집에 가서 송어회를 먹어 보리라.

내가 광절열두조충에 걸리면 무조건 송어회가 원인,

연구라는 건 때론 이렇게 몸을 바쳐서 해야 될 때도 있는 법이다.


 

* 덧붙이는 말

광절열두조충이 조각을 내려보내도

좌변기에 앉아 무심코 물을 내려버리면 모를 수도 있는데,

그래서 하루 한번씩은 자신의 결과물을 볼 필요가 있다.

꼭 기생충이 아니더라도 여러 질병의 징후를 변에서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변이 짜장 같다면 위궤양이나 위암을 의심해야 하고,

그냥 붉은 피가 묻어나온다면 치질이나 대장암일 수도 있다.